[이데일리 문승관 기자]현대상선 채권단이 사실상 7000억원 규모의 조건부 출자전환을 의결했다. 일반 회사채를 출자전환하는 내용의 사채권자집회도 이달 말과 다음달 1일 이틀에 걸쳐 열린다. 난항을 겪고 있는 해외 선주와의 용선료협상을 제외하면 다른 채무재조정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채무재조정의 선결 조건은 성공적인 용선료 인하 협상이다. 용선료 협상이 끝내 파행으로 치닫는다면 은행권 채무 재조정을 주요 내용으로 한 조건부 자율협약은 파기되고 현대상선은 법원 주도의 회생절차(법정관리)가 불가피해진다.
채권단이 조건부지만 출자전환을 의결한 것은 용선료 협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통을 ‘선 분담’한다는 모습를 보여줌으로써 막바지에 이른 용선료 협상에 힘을 싣는 한편 선주들도 고통분담에 참여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가한 것이다.
◇“법정관리 피하자”…‘先출자전환’ 카드 꺼낸 채권단
산업·하나·우리·국민·농협·신한·경남은행과 신용보증기금, 회사채안정화펀드 등 9개 채권 금융기관은 24일 서면으로 의견을 보내 출자전환을 의결했다. 출자전환은 전체 지분율 중 75% 이상이 동의하면 안건이 가결된다. 출자전환 규모는 무담보 일반채권 60%, 회사채 신속인수제로 보유한 채권 50% 등 총 7000억원이다.
산업은행은 용선료 인하를 단서로를 달아 조건부 출자전환을 제시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번 출자전환은 말 그대로 조건부”라며 “용선료 인하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채무조정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조건부 출자전환을 의결한 것은 우선 법정관리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해 보자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용선료 인하 협상이 난항을 겪으며 길어지자 출자전환을 의결해 시장과 사채권자에게 채권단의 의지를 보여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이끄는 한편 이달 말까지 현대상선 회생 데드라인을 늦춰보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현대상선의 법정관리 여부는 이달 31일 사채권자 집회까지 연장됐다. 용선료 인하 협상에 실패하면 채무 재조정도 물거품이 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채권단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용선주에게만 양보와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함께 고통을 나눠 용선료 인하를 위한 노력을 보이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씨’ 살린 사채권자집회
용선료 인하 협상의 다음 관문인 사채권자 집회도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일반 회사채를 출자전환하는 내용의 사채권자집회도 모든 회차의 개최가 확정됐다. 543억원 규모의 현대상선186회는 물량 대부분을 개인투자자가 들고 있어 사채권자집회 소집이 난항을 겪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적잖은 투자자가 서둘러 법원 공탁을 마쳐 확정됐다.
전체 8043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50% 이상 출자전환하고 나머지는 2년 거치와 3년 분할 상환으로 5년 만기로 바꾸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원금에 대한 이자는 모두 연 1%로 조정하고 분기마다 지급한다.
가결 여부는 ‘불투명’하다. 채권단과 달리 비협약 채권자인 이들은 고통분담에 참여하는 데 비관적이다. 조정안이 사채권자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의견이 나온다면 채무재조정안이 불발될 수 있다. 따라서 용선료 협상 여부와 상관없이 법정관리로 직행할 수 있다. 앞서 현대상선은 지난달 17일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회사채 1200억원의 만기 연장을 추진했으나 투자자의 반대로 실패했다.
지역농협과 신협, 새마을금고, 저축은행 등 기관 투자자의 동의 여부가 중요한데 이들도 채무재조정 가결의 핵심 조건으로 용선료 인하를 꼽고 있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사채권자집회 개최에 동의했지만 아직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용선료 인하가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용선료 인하 협상이 잘 이뤄진다면 사채권자들의 채무재조정도 쉽게 풀릴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