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러시아산 가스 의존' 시대…반세기만에 마침표

방성훈 기자I 2025.01.02 14:18:36

우크라-러 가즈프롬, 5년 가스 운송 계약 작년 만료
"가스 팔아 전쟁자금 활용"…우크라, 계약 갱신 거부
유럽 가스 가격 '꿈틀'…"올해 어찌 채울지 걱정"
“대체 공급처 이미 확보…큰 영향 없을 것” 반론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유럽이 러시아산(産) 가스에 의존하던 시대가 반세기 만에 끝을 맞이했다. 사실상 마지막 공급처로 여겨졌던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 밸브마저 잠기면서다.

우크라이나 서부 리비우에 위치한 가스관 및 지하 가스 저장 시설. (사진=AFP)


◇우크라 “러産 가스 공급 운송 끝…역사적 사건”

1일(현지시간) CNN방송,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날을 기점으로 자국 영토를 경유해 유럽으로 공급됐던 러시아산 가스 수송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국영 가즈프롬과 2019년에 체결했던 5년 가스관 사용 계약이 지난달 31일 종료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가즈프롬 역시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 이날 오전 5시부터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 공급을 끊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이날 수송 중단을 알린 가스관은 러시아 수자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우렌고이를 거쳐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및 기타 동유럽 국가로 가스를 공급해 온 가스관이다. 이 가스관은 지난 50여년 간 유럽으로 가스를 보낸 주요 수송로 역할을 했다. 로이터는 반세기 동안 지속된 유럽 에너지 시장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가 종식됐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당했음에도 가즈프롬과의 계약에 따라 3년 가까이 연간 150억㎥ 규모의 러시아산 가스를 유럽에 공급해야 했다. 가스 운송료가 우크라이나에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긴 했으나, 러시아가 더 큰 이득을 봤다. 로이터에 따르면 가즈프롬이 지난해 우크라이나 경유 가스관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약 50억달러(약 7조 3470억원)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가 운송료로 벌어들인 연수입(8억달러·약 1조 1755억원)의 6배가 넘는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가즈프롬과의 계약 갱신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러시아가 현재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적국인 데다, 가스판매 대금이 전쟁자금으로 쓰이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헤르만 할루셴코 우크라이나 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국가안보를 위해 (가즈프롬과의) 협정을 종료하고, 러시아산 가스 경유를 중단했다. 러시아는 (유럽) 시장을 잃고 재정적인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이는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역시 이번 가스관 폐쇄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러시아는 연간 약 65억달러(약 9조 5400억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가 그동안은 가스관에 대한 공격을 피해 왔지만, 더이상 이익이 없기 때문에 이젠 폭격을 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 가스 가격 급등 우려…“대체 공급처 확보” 반론도

유럽 내 가스 가격이 급등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에 따르면 가스 운송 중단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유럽의 가스 가격은 1000㎥당 536달러까지 치솟아 2023년 11월 27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친(親)러시아 성향으로 우크라이나의 가스 수송 중단 결정에 반대해 온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가 아닌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우리 모두에게 극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드 매킨지의 마시모 디 오도아르도 연구원도 “유럽은 내년 겨울 전까지 필요 물량을 다시 채우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유럽 가스 가격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EU는 2022년 제재 일환으로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중단한 뒤 노르웨이에서 수입하는 물량을 확대하고, 카타르와 미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하기 시작하는 등 이미 대응을 끝마쳤다. 2021년 약 40%에 달했던 러시아산 가스 수입 비중도 현재 8%까지 쪼그라들어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로이터도 러시아산 가스의 마지막 구매자였던 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는 현재 대체 공급처를 확보한 상태라고 전했다. 다만 또다른 친러시아 국가인 헝가리가 유일하게 흑해를 가로지르는 투르크스트림을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계속 공급받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는 그동안 에너지를 무기화하며 (유럽을) 협박해 왔다”며 “유럽으로의 가스 수송 중단은 모스크바의 가장 큰 패배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가격 급등 우려를 의식한 듯 “미국이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늘렸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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