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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기자가 살고 있는 동네는 뉴욕 맨해튼과 뉴저지주(州) 사이를 흐르는 허드슨 강(江)을 끼고 있다. 강 옆으로 난 리버로드를 달리다 보면 ‘팰리세이즈 인터스테이트 파크’로 빠지는 우회도로가 나타난다. 이 곳으로 들어가면 100미터 높이의 절벽이 허드슨 강을 따라 32km 가량 뻗어 있는 팰리세이즈 절벽을 만날 수 있다. 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맨해튼의 고층 빌딩 숲과 대비를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자그마치 2억년 전에 만들어진 절벽이라고 한다. 그랜드캐니언보다 더 오래됐다. 매의 서식지로, 또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그 앞을 지나갔지만 한참을 들어가 볼 생각을 안 했다. 입구에 특별한 안내도 없고 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저 흔한 동네 공원 정도겠지..` 생각하고 말았다. 매사에 궁금한 게 많은 아내가 운동 삼아 한번 가보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집 근처에 팰리세이즈 절벽이란 게 있는지도 모른 채 한국으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관광지로도 전혀 개발되지 않았다. 아이들 놀이터와 주차장, 약간의 나무 테이블이 그 공원의 전부다. 절벽 아래 한적한 산책길을 걷다 보면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을 간간이 만날 뿐이다.
맨해튼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팰리세이즈 절벽이 개발에서 비켜나 지금껏 보존될 수 있었던 건 록펠러 가문의 공이 컸다. `석유왕`이라고 불렸던 미국의 대부호 존 데이빗 록펠러가 팰리세이즈 절벽을 지켜달라며 주변 수백만평의 땅을 통째로 사들여 주정부에 기부했기 때문이다. LG전자가 이 절벽 위에 8층짜리 건물을 지으려고 했을 때 록펠러 가문이 나서서 `우리가 이러려고 기부한 줄 아느냐`며 공사를 막았을 정도로 이 곳에 공을 들였다. 건설 허가권은 시(市) 의회가 가지고 있었지만 땅을 기부한 록펠러 가문의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록펠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부자였던 인물로 통한다. 포브스는 록펠러의 재산이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3180억달러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 돈으로 약 366조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부자의 대명사인 빌 게이츠도(850억달러, 약 98조원)도 록펠러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미국 석유사업을 사실상 독점했던 록펠러는 알고 보면 악랄한 사업가였다. 작은 경쟁업체를 인정사정없이 몰아쳐 파산하도록 만든 다음 사업을 송두리째 뺏는 일을 일삼았다. 록펠러는 인수한 콜로라도의 광산회사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이자 주정부군을 끌어들였다. 파업을 강제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린이 11명을 포함해 총 20명에 이르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루드로 학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록펠러는 탐욕스러운 자본가의 대명사가 됐다. 이 무렵 록펠러는 스트레스성 소화불량과 우울증 증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도 마냥 좋았던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 록펠러는 자선사업가로 변신한다. 시카고대학을 세우고 의학연구소를 세웠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단체인 록펠러재단을 만들었다. 록펠러는 자선사업에 마음껏 돈을 쓰며 98세까지 살았다. 록펠러 가문의 후손이자 환경전문 변호사인 로렌스 록펠러 미국보존협회 회장은 지금도 팰리세이즈 절벽을 지킨다. LG가 신사옥의 층수를 낮추기로 양보하자 록펠러 회장은 “LG가 미국의 국가적 보물을 보호하는 용단을 내렸다”며 치하했다고 한다. 돈은 역시 이렇게 쓰는 게 제일 멋지다. 부자가 존경받는 방법은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 한국 재벌도 이런 건 좀 배우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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