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우여곡절끝에 열린 신한금융지주(055550) 이사회는 `신상훈 사장 직무정지`라는 결과를 내놓고 일단 봉합됐지만 도마위에 오른 3인방의 향후 거취와는 무관하게 신한금융그룹이 입은 상처는 크다.
은행업종을 담당하는 한 애널리스트는 "시장에서 신한지주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면서 "라응찬 브랜드로 인해 신한지주가 누릴 수 있었던 프리미엄이 얼마나 줄어들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신한지주가 갖고 있는 프리미엄은 과거 수십년간 쌓여온 것이라는 점에서 한 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데도 비슷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걱정을 내비쳤다.
◇ 완벽한 지배구조는 없다
이번 신한사태가 남긴 상처와 관련해 금융권에서 이구동성으로 언급하는 것은 `신한은 다르다는 환상이 깨졌다`는 점이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관계자는 "주인없는 은행의 지배구조는 원래 불안하고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언급하고 "신한지주는 그 한계를 가장 잘 극복한 모범 케이스로 인식되어 왔는데 알고 보니 속으로 곪고 있었고 이것은 은행 지배구조에 대한 고민을 또 한 번 던져준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99년 라응찬 신한은행장이 회장으로 물러나면서 당시 2인자로 평가받던 고영선 전무가 신한을 떠났던 일이나 조흥은행과 합병과정에서 2인자로 떠올랐던 최영휘 사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거됐던 것도 그만큼 후계구도가 불안했다는 반증이다.
주주가 아닌 CEO가 후계자를 결정하는 구조에서 나타난 문제, 시스템이 아닌 CEO 개인에게 의존하는 지배체제가 가진 한계라는 지적이다.
한 대학교수는 "주인없는 은행의 가장 이상적인 지배구조는 능력있고 사심없는 CEO가 조직을 이끌면서 적당한 시기에 후계구도를 만들고 떠나는 것인데 이런 인물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그래서 능력이 부족하면 사외이사들에게 휘둘리고 능력이 넘치면 장기집권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내부견제 장치 만들어야..`어떻게`가 문제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CEO의 독주를 막기 위해 내부의 견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어떻게`에 대한 답이 없다는 점이다.
신한사태를 2인자의 배임 횡령 사고로 단순하게 보지 않고 2인자를 쳐내려는 1인자의 시도로 해석하게 된 배경에는 1인자 역시 검은 정치자금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배임이든 횡령이든 불가피한 관행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고, 문제는 이런 관행을 내부에서 견제하거나 제어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은행은 태생적으로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정권 실세에 줄을 대고 외풍을 막아내는 능력이 금융회사 CEO의 필수자질 가운데 하나"라면서 "이런 자질과 네트워크는 인수인계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자리잡은 CEO가 장기집권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단순히 은행의 지배구조 문제로만 접근해서 해결될 사안이 아닌 사회의 구조적 병폐와 관련된 문제라는 얘기다. 이사회 멤버들이 알고 있는 정보와 CEO가 알고 있는 정보의 격차가 크다는 점도 내부 견제를 현실적으로 어렵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 `신한 웨이`의 추락 vs 전화위복
이번 사태가 신한지주의 펀더멘털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이유야 어찌됐건 CEO가 부패에 연루된 것은 직원들에게 `나도 이 정도는 괜찮다`는 핑계를 제공한다"면서 "승진을 위해서는 일 뿐만 아니라 정치도 잘해야 한다는 결론은 직원들의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성장한 신한은행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어찌됐건 이번 사태로 장기집권이 마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신한지주 입장에서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또 다른 증권사 은행담당 애널리스트는 "길게 보면 어떤 식으로든 신한지주의 지배구조 교체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다소 매끄럽진 않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나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