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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법관 76명의 명단과 이들의 비위 관련 사실을 대법원에 통보한 것에 대해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시철(54·사법연수원 19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전날 서울고법 판사들에게 ‘검찰의 2019.3.5. 통고행위의 위법성 등에 관한 법리적 검토’란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앞서 검찰은 지난 5일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현직 판사 66명의 비위 관련 자료와 기소된 법관 10명에 대한 참고 자료를 대법원에 넘겼다. 김 부장판사 역시 76명의 통고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재연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에 대해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업무보고에 나와 “비위 통보 내용 등을 종합 검토해 법관들에 대한 추가 징계청구 범위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부장판사는 글에서 이런 사실들을 언급한 뒤 “일부 언론은 ‘검찰의 통고 후 상당 기간이 지났지만 대법원에서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있다’고 보도했다”며 “이는 검찰의 통고행위가 정당한 것임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전제 자체가 법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또 “검찰은 지난 5일 기소한 법관들 이외 다른 법관들에 대한 수사가 종료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다”며 “그렇다면 검찰의 법관 76명에 대한 통고행위는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위법한 것이고, 대법원에서 이를 바탕으로 섣불리 후속 조치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이 해당 법관을 단순히 참고인으로 조사했을 경우 이를 소속기관에 통고할 법적 근거가 없고, 또한 해당 법원을 피의자로 입건한 경우에도 수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위 법관에 관해 소속기관에 통고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검찰의 통고 행위가 오히려 ‘공무상 비밀의 누설’ 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의 자료가 편향됐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검찰이 이번 수사과정에서 생성한 수사 자료는 수십만 쪽에 이르는데, ‘현직 법관 66명의 관련 수사 자료’에 첨부된 것은 700여 쪽에 불과하다”며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에 부합하는 듯한 자료만 선별해 대법원에 통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썻다.
그러면서 “위법성이 명백한 자료 통고를 토대로 해당 법관의 징계 여부 등에 관해 조사하는 것은 효력이 없다”며 “대법원이 여러 사정을 고려해 신중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글을 마쳤다.
한편 김 부장판사는 2015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조작’ 항소심 사건을 고의 지연한 의혹을 받는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원세훈 사건 환송 후 심리방향’ 등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김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48페이지 분량의 장문의 글을 올려 “그 당시 저는 통상적인 업무처리방식에 따라서 업무를 처리했고, 관련자의 직권남용행위 등과 같은 불법적 행위가 제가 담당한 해당 사건의 재판에 영향을 미친 적도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이메일 압수수색이 법에 어긋난다며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