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염지현 기자]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 규모가 2000년 이후 1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적대적 M&A는 대주주외 제 3자가 대주주 의사에도 불구하고 회사 경영권을 빼앗는 인수합병 방식을 말한다. 크게 공개매수, 시장매집, 위임장 대결 등의 방법을 이용하며 우호적 M&A와는 다르게 매수당하는 측 대주주와의 협의 없이 이뤄진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 조사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뤄진 적대적 M&A 시도가 25건에 이르며 금액으로는 2900억달러(약 295조460억원)에 이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 보도했다.
이는 2014년 이뤄진 전체 M&A 시도의 19%에 해당되며 딜로직이 지난 2000년부터 조사한 규모 가운데 최대 수준이다.
이처럼 적대적 M&A가 활발해진 것은 기업들이 향후 경기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보인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기업들이 최근 들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금 지급과 같은 전통적 방법보다는 M&A라는 ‘빅 딜(big deal)’을 통해 몸집을 키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빌 앤더스 골드만삭스 글로벌 M&A 방어전략 부문 대표는 “이전보다 저렴한 자금조달 비용과 풍부한 사내유보금, 경기 회복 추세 등으로 적대적 M&A 시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며 “주주들도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면서 이를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적대적 인수가 항상 성공한 것만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최근 세계 최대 제약업체 화이자가 영국 경쟁업체 아스트라제네카를 주당 55파운드, 총 690억파운드(약 118조원)에 인수하려던 시도다.
미국 기업 화이자는 아스트라제네카를 인수하기 위해 세 번이나 조건을 바꿔가며 시도했지만 결국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FT는 또 차터 커뮤니케이션스가 경쟁 케이블업체 타임 워너 케이블을 적대적으로 M&A 하려다 실패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타임 워너 케이블은 424억 달러를 제시한 컴캐스트에 우호적으로 인수됐다.
크레디트 스위스의 비카스 세스 글로벌 M&A 공동 대표는 “적대적 M&A 능력은 예술과도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밖에 바이오 기술회사 발레안트는 헤지펀드 큰 손 빌 에커먼 등과 제휴해 보톡스 제조업체 알레간을 620억 달러에 적대적 M&A 하려고 하지만 대상 기업의 저항이 완강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