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난자만을 이용해 발생시킨 ‘아버지 없는’ 쥐를 한·일 공동 연구진이 탄생시켰다.
생명공학기업인 마크로젠(대표 서정선)은 22일 “일본 도쿄 농대 고노 도모히로(河野友宏) 교수팀과 함께 정자와 수정 없이 난자 2개만을 결합시키는 처녀생식(parthenogenesis·단성생식)을 통해 건강한 생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22일자에 게재됐다.
그러나 이 기술은 이론적으로 같은 포유류인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아버지 없는 생식’이 인간에게 일어날 경우 큰 윤리적·사회적 논란이 일 전망이다.
그동안 처녀생식으로 건강한 포유류의 새 개체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으나, 연구팀은 난자의 유전자 중 처녀생식을 방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전자(h19)를 화학적 방법으로 제거한 뒤, 정상 난자에 결합시켜 건강한 생쥐를 탄생시켰다. 연구팀은 모두 343개의 수정란을 26마리의 대리모(代理母)에 이식, 이 중 8마리가 태어났고 두 마리가 최종 생존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고노 교수팀이 논문 저자 7명 중 5명으로 참여, 주도했으며 마크로젠 연구팀은 처녀생식으로 태어난 생쥐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DNA칩 기술을 제공했다. 서정선 마크로젠 회장은 “부모의 유전자가 서로 상호작용해 자식에게 전달되는 생명의 신비를 풀 길이 열렸다”며 “질병 관련 유전자를 조절하는 연구를 비롯, 기존의 여러 생명공학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노 교수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동물이 아닌 인간에 대해 이번 연구 성과를 직접 적용하는 것은 몰지각한(senseless) 일”이라고 지적했다.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는 “기존의 교과서를 바꿔야 할 만큼 획기적인 연구 성과이지만, 자신의 난자 2개를 사용할 경우 대안적인 ‘인간복제’로도 활용될 수 있는 등 큰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男+女=새 생명" 공식 깨졌다
세계최초 "포유류 처녀생식" 성공
난자만을 이용한 처녀 생식으로 ‘아버지 없는 쥐’가 탄생한 것은 포유류에서 난자 한 쪽만으로는 개체가 발생할 수 없다는 기존 학계의 정설을 완전히 뒤엎는 ‘대사건’이다.
이를 인간에게 적용할 경우 이론적으로는 난자 2개로 자기 복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염색체가 ‘XX’인 여성들만 이론적으로 자기복제가 가능하다.
그동안 생물학계에서 이 같은 처녀 생식(단성생식·單性生殖) 시도가 있었으나, 단일 성(single sex)의 생식세포를 아무리 합쳐 놓아도 정상적으로 개체가 발생하지 못하고 결국은 발생 며칠 만에 죽어버렸다. 자연계에서 단성생식은 벌·진딧물·물벼룩 등 곤충이나 어류, 민들레·옷굿나물 등 식물에서만 관찰돼왔다.
포유류에서 유성 생식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포유류 발생에는 양성(兩性)의 생식세포 융합을 통해 나타나는 유전자에 의해서만 발생 과정이 조절되는 체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유전적 각인(Genomic Imprinting)이라고 한다. 그러나 포유류의 개체 발생 초기에 난자와 정자의 유전정보(DNA)가 똑같은 비중으로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부계(Male)와 모계(Female)에서 받는 한 쌍의 유전자 중 ‘유전적 각인’ 과정을 거쳐 어느 한쪽의 유전자는 기능을 하고, 나머지 한쪽의 유전자는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즉 2세의 특정 부분은 부계쪽 유전자에 의해서만 만들어지고, 어떤 부분은 모계쪽 유전자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연구팀은 이 같은 부계·모계 유전자 발현 과정을 규명, 처녀 생식을 가능케 했다. 유전자를 분석하는 고밀도 DNA칩을 이용, 초기 발생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밝혀냈고, ‘처녀 생식’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의 발현 양상을 발생 단계별로 분석했다. 이후 처녀 생식을 방해하는 유전자들을 유전자 조작으로 제거, 출산에 이르게 했다.
◆서정선 마크로젠회장 "유전자 분석기술 세계최고 검증"
서정선(徐廷瑄·52·사진) 마크로젠 회장은 고노 도쿄농대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세계 최초로 ‘아버지 없는’ 생쥐를 탄생시킨 것과 관련, 22일 기자에게 “세계적 과학잡지인 네이처에 게재될 정도로 한국의 유전자 분석기술이 세계 정상 수준임을 검증받은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2003년 초 연구 결과가 거의 마무리됐지만, 확인을 거듭하는 네이처의 검증절차 때문에 연구가 1년 뒤에야 게재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연구성과는 ‘아버지 없이’ 태어난 쥐가 14개월이 지나 생식능력을 입증받은 뒤에야 네이처에 게재됐다.
서 회장의 마크로젠이 이번 연구에 기여한 부분은 유전자 분석 분야. 마크로젠이 개발한 DNA 칩은 ‘아버지 없는’ 생쥐의 유전자 1만개를 손쉽게 분석, 연구팀이 정상적인 생쥐의 유전자와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서 회장은 국내의 대표적인 생명공학 벤처기업인. 1983년 서울대 의대 교수로 부임한 이래 선천성 면역결핍증 유발 생쥐 개발 등 생명공학 분야에서 굵직한 성과를 이뤄내왔다. 97년부터는 DNA칩 제조 업체 마크로젠을 설립, 유전자 분석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