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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구 한화투자증권(003530)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증시랠리 배경이 된 상장사 이익 성장에 대해 “애널리스트의 뻥튀기가 심하다”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1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코스피지수를 두고 “과열된 상태”라고 지적하는가 하면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정보기술(IT)업종은 “장기투자하려고 샀다간 물릴 수 있다”고 경고해 눈길을 끌었다.
◇“IT 고점 찍으면 위험…주식 투자 신중해야”
김 센터장은 현재 증시를 두고 “저(低)금리에 자금이 갈 곳 없는 상황인데다 반도체업종 상승사이클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기업 이익까지 증가하고 있지만 거시적인 측면만 떼어놓고 보면 증시를 움직이는 두 엔진인 유동성과 실적 모두 과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증시에 대한 기대감이 극대화된 사실상 고점 상태라는 평가다.
증시 상승을 주도하는 경기민감(씨클리컬)업종 사이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그는 “미국에서는 경기민감주에 밸류에이션을 매기지 않는데 이는 장기투자보다 투기적 성격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좋을 때는 마구 올라가다가 고점에 이르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게 바로 경기민감업종”이라고 말했다. 사이클을 타는 업종이기 때문에 실적이 고점을 찍고 내려오면 당분간 반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주가수익비율(PER)이 저점일 때 사서 고점에 팔라`는 증시 격언과 달리 경기민감주는 PER이 높을 때, 즉 현재 가치대비 실적이 낮은 상황일 때 사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이클을 타는 업종은 고(高)PER 상황이 매수 적기라는 얘기다. 그는 “실적이 늘어나는 현 상황에서 장기투자 목적으로 투자했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업황 사이클이 10년전과 비슷하다는 그는 2~3분기가 IT업종 고점일 것으로 보고 있다. IT업종이 고점을 지나 실적이 감소하기 때문에 최대 130조원대로 책정해놓은 증권가의 상장사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 또한 하향 조정될 것으로 점쳤다. 김 센터장은 “상반기 삼성전자 실적을 보면 얼마든지 이익이 나올 수 있어 보이지만 꺾이는 것도 한순간”이라며 “올 연간 상장사 영업이익이 100조원을 넘는 것은 확실하지만 120조원까지는 힘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결국 이익 기대가 최대한 반영된 현재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기엔 동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는 “경기민감업종 실적이 증가하는 데로 주가가 오르는 것도 위험하다”며 “코스피지수가 2700~2800선까지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2500선이 유지 가능한 지수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역설했다.
◇“애널 경쟁력 키워야 자본시장 신뢰 높아진다”
증시 랠리가 계속된다는 낙관이 대세인 요즘 신중론을 펼치는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모두가 좋다고 할 때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라고 토로하면서도 이것이 시니어 애널리스트로서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애널리스트도 이해관계상 기업 입장에서 최대한 좋게 써주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럴수록 개인투자자의 불신을 사게 된다”는 그는 “고점에 들어갔다가 물리는 개인투자자를 위해서나 시니어로서 책임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는 추세다. 그는 “유럽에서는 내년부터 운용사 펀드가 지출하는 수수료에 리서치 비용을 포함하지 않고 고유계정으로 지출토록 했다”며 “애널리스트 필요성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내에서 9월부터 실시하는 목표주가 괴리율 공시도 지난해 미국에서 시작한 방식을 벤치마킹한 제도다. 그는 “증권사별로 목표주가 괴리율이 표시되면 신뢰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굉장히 예민한 문제”라며 “여러 종목의 목표주가를 크게 띄워놓고 한 두 개만 맞추면 된다는 식의 영업방식이 차츰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9월 제도 시행 전 목표주가를 낮추다 보면 기업 실적도 조정하게 될 테니 연초 세웠던 상장사 영업이익 추정치 하향 조정도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앞으로 실적을 맞추기 위한 분석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김 센터장은 “실적 발표 직전까지도 기존 컨센서스를 유지한채 낙관적 의견을 내다가 어닝 쇼크가 나면 이후 리뷰를 쓰는 게 현 실태”라며 “주가보다 더 중요한 실적 추정치가 정확해져야 투자자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고 제언했다. 결국 애널리스트 경쟁력 강화가 4차 산업혁명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정도라는 해석이다. 김 센터장은 “초상화가 대부분이던 과거에 카메라가 나오자 화가들의 밥줄을 끊겼지만 이 때부터 천재 화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며 “기계의 영역을 아예 뛰어넘는 천재 애널리스트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