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주일새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기업(IDM)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재진출을 선언하고, 미국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WD)은 일본 키오시아(옛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파운드리 1위인 대만의 TSMC는 다시 한 번 천문학적인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메모리 반도체 1위이자 파운드리 2위 업체인 삼성전자(005930)는 이렇다 할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중국 등 글로벌 기업들이 왜 저렇게 반도체를 하려고 하겠느냐. 반도체가 곧 국가의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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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공장 증설은 아직 확정 못지어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미국 텍사스, 애리조나, 뉴욕 등 미국 내 여러 후보지와 기존 국내 사업장 등에 대한 공장 증설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경쟁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투자 결정을 지연시키는 한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삼성은 지금 이 상황을 알고 있어도 소통이 안 되고 있다. 사법 리스크가 이렇게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을 때려잡고 기업은 혁신을 안 한다. 우리도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소장은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 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며 “대만의 TSMC도 회장이 직접 고객사에 편지를 보내고 있다. 천문학적 숫자의 투자에 대해 결정하는 것은 오너가 아닌 누군가가 함부로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기 전에 국가 차원에서 생태계 조성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선 돈이 있어도 할 수 없다”며 “국가가 나서서 파운드리 업에 적당한 인력들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텔이 저런 결정(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할 때까지 미국 산업계와 정부와 교수들과 얼마나 많은 소통을 했을까 싶다”며 “그 소통이 있었기에 인텔의 결정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소통에 갇혀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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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업 합심해 반도체 패권 전쟁 뛰어들어
삼성전자의 투자 결정이 지연되는 동안 경쟁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최근 고객사에 보낸 서한에서 “TSMC는 지난 1년간 공장 가동률이 100%에 달할 정도로 풀가동을 하고 있으나 수요가 공급을 추월하는 상황”이라며 “TSMC는 수 천명의 직원을 신규 고용하고 새 공장도 건설 중이며 내년 초부터 웨이퍼 가격 인하를 중단할 것”고 전했다. 그러면서 차량용 반도체 등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향후 3년간 총 1000억달러(약 112조7600억원)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자동차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가전 등 전 산업으로 확대되자 각국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반도체 패권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5세대 이동통신(5G),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 전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어 반도체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024년까지 투자비의 40% 수준 세액공제 △반도체 인프라와 연구개발(R&D)에 228억달러(약 25조7100억원) 지원 △2조2500억달러(약 2542조5000억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 중 500억달러(약 56조4500억원)반도체 분야에 투입 등이다.
이에 발맞춰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인텔은 파운드리 사업에 3년 만에 재진출한다. 또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은 일본 반도체회사 키오시아 인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