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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서 골리앗 이긴 삼양통상 개미군단

박수익 기자I 2015.03.27 16:04:05

27일 주총서 회사측 정관 부결시키고 주주제안 감사 선출
상법상 회사측보다 불리한 주주제안 제도 극복하고 승리
“非경영권분쟁때도 소수주주 감시 필요성 인정받은 사례”

[이데일리 박수익 박기주 기자] 골리앗을, 그것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겼다.

재벌가(家)와 소액주주들의 표 대결로 관심을 끈 삼양통상(002170) 정기주주총회에서 개미군단의 ‘반란’이 성공했다.

27일 열린 삼양통상 주총에서 소액주주들은 ‘감사 1인 이상’을 ‘감사 1인’으로 변경하는 회사측 정관변경안건을 반대 39.2%, 찬성 60.8%로 부결시켰다. 특별결의사항인 정관변경은 주총출석 의결권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소액주주들이 지분 28.7%를 모았고 조광피혁(004700)도 반대표에 동참하면서 정관변경 부결을 이끌어냈다.

이어서 진행된 감사선임에서는 주주제안 후보 강상순 전 LG유플러스 네트워크팀장을 비상근감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찬성 74.9%, 반대 25.1%로 통과됐다.

삼양통상의 이번 주총 결과는 △적대적 인수합병(M&A)과 같은 경영권 분쟁 사례가 아니고 △대주주 지분율 50%를 넘는 굴지 대기업 계열사를 상대로 △소액주주에 불리한 제도적 장애물을 극복하고 일궈낸 성과라는 점에서 국내 소액주주운동사(史)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현행 상법상 주주제안은 주주총회 6주 전까지 해야 하지만, 회사가 발표하는 주주총회 안건공고는 주총 2주 전까지만 하면 된다. 삼양통상은 이를 적극 활용, 소액주주들이 주총 6주전 비상근감사 선임안건을 주주제안으로 전달하자, 주총안건공고를 통해 ‘감사1명 이상’을 ‘감사 1명’으로 바꾸는 정관변경안을 내놓았다.

주주들은 회사의 카드를 알 수 없는 가운데 주주제안을 전달한 반면 회사는 주주들의 카드를 파악한 뒤 대응전략을 세운 것이다. 만약 회사 측 정관변경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됐더라면, 현재 재직 중인 회사측 상근감사 외에 새로운 감사를 선임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라져, 주주제안 안건은 자동 폐기될 예정이었다.

정관변경은 일반안건보다 가결요건이 엄격한 특별결의사안이긴 하지만 삼양통상은 이미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51%를 확보한 상황이어서 회사 측에 유리한 국면이기도 했다. 회사와 주주가 만나는 주총을 ‘축구장’에 비유하면, 삼양통상 주총은 경기 시작 전부터 평평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승부는 결국 골리앗이 아닌 개미군단 ‘다윗’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주주제안으로 선출된 강상순 감사는 회사측 상근감사와 동등한 지위를 확보, 앞으로 3년 임기 동안 회사의 회계·업무 감사를 수행한다. 또 이사회에 출석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고, 임시주총 소집 청구, 자회사에 대한 영업보고 요구 등의 권한도 가진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회계사는 “삼양통상 주총 결과는 경영권분쟁이 아닌 일반적 상황에서도 소수주주들의 적극적 감시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받은 사례로 의미가 있다”며 “주주제안으로 선출된 감사가 제대로 역할을 해주면 기업가치 증가에도 도움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삼양통상은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사촌형 허남각 회장(지분율 20%)이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GS그룹 계열로 속해 있지만, 독립 경영을 하고 있다. 허남각 회장의 아들이자 GS가(家) 장손 허준홍 GS칼텍스 상무도 지분 20%를 보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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