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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신라의 지방관리 벌벌 떤 이유는?

김용운 기자I 2017.01.04 14:48:25

함안 성산산성 17차 발굴조사 결과 발표
목간 23점 공개
4면에 글씨 써진 사면목간 눈길
신라 율령지배 실증할 수 있는 유물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 23점을 공개하고 있다. 이 목간은 함안 성산산성 17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것으로 신라의 지방 지배체제와 조세체계 등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3월에 진내멸 촌주가 두려워하여 삼가아룁니다.”

6세기 중반 신라가 백제와 중원의 패권을 겨루며 법치와 중앙집권을 강화한 사실을 증명해주는 목간이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4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함안 성산산성 17차 발굴조사(2014~2016년)에서 나온 23점의 목간을 공개했다.

목간이란 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다듬어진 나무 조각에 글자를 쓴 것으로 종이가 귀했던 고대에 종이 역할을 했다.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은 신라의 지방 지배체제와 조세체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함안 성산산성에서 나온 목간 중 4면에 모두 글자가 기재되어 있는 사면목간 1점은 특히 17차 발굴조사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그동안 발굴된 목간은 주로 물품의 인식표였지만 사면목간 1점은 일종의 행정문서로 당시 신라가 왕권을 강화한 후 중앙집권적인 행정 체계를 시행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발굴된 사면목간은 진내멸 지방의 촌주가 중앙(경주) 출신 관리에게 올린 일종의 보고서다. 60일간 일해야 할 인부를 30일만에 돌려 보낸 뒤 자신이 법령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 것을 알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주보돈 경북대 교수는 “사면목간을 통해 6세기 중 신라 지방사회까지 문서행정을 구체적으로 시행한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며 “7세기 중반 신라의 삼국 통일 배경에는 6세기부터 신라가 율령을 통해 지방까지 통치하며 이뤄낸 강력한 중앙집권과 법치가 밑바탕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에서 신라 중앙 정부내 한 관등체계인 ‘경위’(京位) 관등명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되어 있지 않은 ‘급벌척’(及伐尺)이라는 신라의 지방직 관등명이 새롭게 등장했다.

최장미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성산산성의 증측 과정에서 쌓아놓은 부엽토 층에 목간이 있어 부식과 훼손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신라시대에는 일정 규격으로 목간을 만들었고 문서 형태의 목간이 온전히 발굴한 것도 17차 발굴조사의 성과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지금까지 출토된 함안 성산산성 목간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집대성하는 ‘한국의 고대목간II-함안 성산산성’ 책자를 올해 중에 발간할 계획이다. 또한 사면목간의 문화재 등록도 검토할 예정이다.

사적 제67호인 함안 성산산성은 경남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조남산에 자리잡은 1,5㎞ 둘레의 산성이다. 6세기 중반 신라가 일본의 친입에 대비해 축성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17차례 발굴이 이뤄졌다. 2321점의 유물이 나왔으며 이중 목간은 308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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