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김 두 후보 모두 추경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슈퍼 추경’이 현실화할 가능성 역시 커졌다. 공약 이행 땐 국가채무가 1300조원을 웃돌 전망으로, 한편에서는 자칫 국가 신용등급에도 타격이 전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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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이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도 이날 30조원 규모의 ‘민생 추경’을 약속했다. 김 후보는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취임 당일 오후에 바로 여야 원내대표 연석회의를 열어 30조원의 민생 추경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 추경 규모를 직접 언급한 것은 김 후보가 처음이다. 이재명 후보의 경우 지역화폐 발행 등 소상공인·서민을 위한 민생안정에 집중한 2차 추경을 공약했지만, 그 규모를 확정하진 않았다. 당 안팎에선 민주당이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던 35조원 규모의 추경 중에서 1차 추경으로 13조 8000억원이 반영된 만큼 2차 추경은 20조원 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다.
다만 이재명 캠프 내부에선 윤석열정부에서 악화한 재정 상황을 감안해 최소한의 추경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재명 캠프 측 관계자는 “재정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추경 규모는 굉장히 제한적일 수 있다”며 “지역화폐 등 기존에 추진하려던 민생을 위한 국고 지원을 확고히 하는 방안들이 들어갈 것 같다”고 했다.
김 후보의 ‘30조 추경’ 공약은 전날 공약집을 통해 ‘튼튼한 재정으로 지속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 나온 것이어서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재정을 보수적으로 운용하겠다면서도 소득세 물가연동제 등 감세 공약에 더해 재정확대 정책을 내세우는 등 앞뒤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물론 현재 국민의힘이 발의한 재정준칙 도입 법안(국가재정법개정안)에는 추경 편성 요건은 예외로 하고 있지만, 김 후보의 이 같은 행보는 ‘재정준칙 실효성’ 논란을 더 키울 여지를 남긴 셈이다. 앞서 정부·여당이 지난 2022년 재정준칙 도입 법안을 국회에 제출됐던 당시, ‘추경 편성 요건 충족시 재정준칙 적용을 피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두면서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단 지적이 잇따랐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감세 정책기조에 재정준칙을 함께하면서 경기가 침체된 측면이 있는데, 이를 답습하는 것”이라며 “감세·추경 공약과 재정준칙은 서로 상반된 정책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누가 되든 슈퍼추경…“국채금리↑, 기업투자 악화”
이·김 대선 후보 모두 사실상 ‘슈퍼 추경’을 공약하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재정 정책 방향은 ‘긴축’에서 ‘확장’으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이 같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놓고선 경기부양 측면도 있지만,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상존한다. 이미 정부가 13조 8000억원 규모 필수 추경의 대부분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기로 하면서 재정건전성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2차 추경에 나선다면 가용 재원은 국채 발행뿐이어서 장기적인 국가 신용도 하락 우려도 커진 상황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 1일 국회를 통과한 13조 8000억원의 추경을 반영한 예산안 상의 국가채무는 본예산보다 7조 4000억원 늘어난 1280조 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8.1%에서 48.4%로 0.3%포인트 오르고, 나라의 실질적인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도 GDP 대비 2.8% 수준에서 3.3%로 상향 조정된다. 윤석열정부에서 도입을 추진했던 재정준칙(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3%)을 5년째 어기는 셈이다. 여기에 2차 추경까지 편성되면 1300조원을 웃돌게 돼 재정건전성은 이보다 더 악화할 전망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내수침체와 글로벌 통상 리스크 등 대내외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과감한 추경과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슈퍼 추경은 대규모 국채발행을 통한 재원 마련이 필요한데, 이렇게 되면 국채 금리가 상승해 기업 투자 위축과 국가신용등급도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