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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영어수업 금지 여부를 포함한 ‘유치원 방과후과정 운영기준’을 내년 초까지 마련하겠다고 16일 밝혔다. ‘유치원·어린이집 영어 금지’ 시행을 1년 뒤로 미루는 게 아니라 결정 자체를 연기한 것이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발표한 유아교육 혁신방안을 통해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교육과정)을 ‘놀이’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무분별한 영어·한글 위주의 방과후과정을 개선하기 위해 오는 3월부터 영어수업을 금지키로 한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사교육만 배불릴 것이란 우려를 제기했다. 그나마 공교육 틀 내에서 이뤄지는 영어 학습을 금지할 경우 교육수요가 사교육으로 이동할 것이란 ‘풍선효과’를 우려한 것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유아대상 영어학원비가 연간 1200만원을 넘는 등 교습비가 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상황이다. 이 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공교육에서의 영어교육을 금지할 경우 ‘교육 격차’가 더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교육부는 결정 자체를 1년 뒤로 미뤘다. 신익현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국장은 “유아 단계의 방과후과정은 적기 교육 관점에서 근본적 개선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도 “국민 의견을 들으면서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개선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1년 뒤 ‘영어교육 금지’ 방향을 철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확답을 피했다. 신 국장은 “지금까지 교육부는 가능한 한 영어 특별활동을 지양하고 예외적 허용 방식을 취해왔다”면서도 “철회 표현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므로 지금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교육부가 유치원·어린이집 영어교육을 금지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전면 재검토’로 방향을 급선회하면서 학부모 불만은 커지고 있다. 충분한 여론수렴 없이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결정을 미루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사립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김지윤(35)씨는 “유치원에서 영어교육을 금지하면 영어학원으로 수요가 옮겨 가 사교육만 커질 것이란 사실은 자명하다”며 “정책을 내놓을 때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해야 하는데 교육부가 자신만의 논리에 갇혀 현실 파악을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익현 국장도 이날 유치원·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 결정을 1년 유예하며 “이유를 막론하고 이 부분과 관련해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교육부가 지난해 ‘2021학년도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에 이어 ‘유치원·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에 대해서도 결정을 유예하자 이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해 8월 수능 개편안에 대해 논란이 불거지자 오는 8월로 결정을 유예한 바 있다.
수도권 대학의 한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 관련 현안은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최종안을 결정하면 이를 잘 설득해 밀고 나가야 한다”며 “지금처럼 결정을 유예하기 시작하면 어떤 정책을 내놔도 일반 학부모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