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 위해 ‘친권 포기 강요’도… 37년 만에 밝혀진 ‘제2의 형제복지원’

김세연 기자I 2024.09.09 16:14:49

사회정화 명목의 불법적 단속으로 시설 입소
수용시설 간 ‘회전문 입소’로 장기 수용되기도
출산한 시설 입소자에는 ‘해외입양 목적의 친권 포기 강요’ 정황도 확인돼

[이데일리 김세연 기자] 수십 년간 은폐돼온 부랑인수용 시설의 인권침해 실상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회)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9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열린 ‘서울시립갱생원 등 성인부랑인시설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이상훈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이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위원회는 9일 오전 서울 중구 위원회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서울시립갱생원 등 성인부랑인수용시설 4곳에서 중대한 인권침해가 일어난 사실을 확인, 수용자 윤모씨 등 13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번 진실규명 대상이 된 서울시립갱생원, 대구시립희망원, 충남 천성원(성지원, 양지원), 경기 성혜원 등 4개소는 부산 형제복지원과 동일한 정부 시책(내무부 훈령 제410호 등)에 의해 운영된 것으로 밝혀졌다. 형제복지원의 경우 1987년 인권침해 실상이 폭로되며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이들 4개 시설에 대해서는 공적 조사가 따로 이뤄지지 않아 그간 인권침해 사실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위원회 조사 결과 수용자들은 경찰·공무원 합동 단속반이 사회정화 명목으로 행한 불법적 단속에 의해 연행된 뒤 민간 법인에서 위탁 운영하는 부랑자 수용시설에 강제로 입소됐다.

위원회는 이번 진실규명을 통해 수용시설 간 수용자를 옮기는 조치가 빈번하게 발생했다고도 밝혔다. 일례로 1987년 형제복지원이 폐지된 이후에도 일명 ‘회전문 입소’로 본인 의사에 반해 경기 성혜원 등 다른 부랑인 수용시설로 옮겨지기도 했다.

일부 시설에서는 출산한 시설 입소자에게 친권 포기를 강요해 신생아를 해외입양 보낸 정황도 확인됐다. 수용자가 출산한 신생아는 출산 당일 또는 다음날 해외입양을 목적으로 입양알선기관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친모에게 친권 포기를 강요한 정황도 확인됐다.

위원회는 “신속한 전원 조치는 출산 이전에 이미 해외입양을 목적으로 한 전원이 결정돼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아동의 기록에서 ‘친권 포기를 하지 않으려고 해 문제’라고 적혀 있으나 친모의 친권 포기서를 받았다는 사실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볼 때 친권포기를 강요한 정황이 확인된다고도 지적했다.

또 시설 규칙을 위반했다며 독방에 감금하거나 시설 간부로부터 폭행을 당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시설 사망자의 시체를 한 의과대학에 해부실습용으로 교부하는 등 인권침해 사례도 이어졌다.

수용자 규모는 1987년 기준 서울시립갱생원 1900명, 대구시립희망원 1400명, 충남 천성원 1200명, 경기 성혜원 520명으로 추정된다. 모두 당시 법적 수용 기준을 초과한 과밀 수용 상태였다. 같은 시기 형제복지원은 3100여 명이 수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진실규명 대상사 이영철(가명·66)씨는 “원복을 깨끗이 세탁하지 않거나 지시를 어긴다는 이유로 맞은 일도 많았다”며 “양지원에서 구타로 죽은 사람이 열댓 명 정도, 흙에 파묻혀 죽은 사람 6~7명, 4.5톤 트럭에 숨어 도망치다 차에서 뛰어내려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위원회는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회복 조치, 시설 수용 인권침해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이어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다른 집단수용시설 피해를 포괄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피해자 보상과 재활 서비스 등을 위한 종합적인 피해회복 대책을 마련하라고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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