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빚을 갚지 못하는 신용불량자 수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경제 활동이 위축돼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반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빚 부담은 커진 탓이다. 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아 중국 경제를 둘러싼 복합 불황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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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 3년새 50% 폭증…노동인구의 1%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중국 법원 자료를 인용해 중국에서 18~59세 성인 854만명이 채무불이행으로 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중국 성인 노동 가능 인구의 1%에 해당하는 수치로 역대 최대 규모다. 채무불이행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2020년 570만명이었지만 3년 만에 50% 가까이 폭증했다.
신용카드 연체·압류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초상은행은 지난해 90일 이상 신용카드 대금을 연체한 사람이 전년보다 26% 증가했다고 밝혔다. 컨설팅기업 차이나인덱스아카데미도 올해 9월까지 중국에서 58만 4000건의 압류가 진행돼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급증했다고 전했다.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강력한 봉쇄 정책과 이에 따른 경제 활동 위축으로 가계 소득이 급감한 반면, 가계 빚은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 산하 싱크탱크 국가재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9월 기준 중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64%로 지난 10년 간 약 2배 확대했다. 중국 언론들은 “3~4년 전까지만 해도 신용불량자 수가 하루 평균 약 2000명씩 증가했지만 최근에는 3000명 수준으로 증가 폭이 가팔라졌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중국에는 개인 파산 관련 법규가 없어 신용불량자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채무 불이행자는 비행기 티켓 구매와 알리페이·위챗페이와 같은 모바일 앱을 통한 결제 등 경제 활동이 차단된다. 리서치기업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약 9억 4300만명의 중국인이 모바일 결제를 사용하고 있다. 전체 인구(2020년 기준 14억 2500만명)의 67% 규모다. 또 채무불이행자와 그 가족은 공공 일자리에 취업할 수 없고, 유료 도로 이용도 금지된다. 일상 생활은 물론 재기할 수 있는 길마저 사실상 막히는 셈이다.
중국 기업파산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류쥔하이 인민대 법학과 교수는 “채무불이행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 왕 항셍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채무불이행자 급증은 경기 침체뿐만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GDP서 中 비중 ‘뚝’…30년래 첫 축소
이런 와중에 중국 경제 둔화의 근본 원인인 부동산 경기는 좀처럼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홍콩 법원은 이날 부동산 위기의 단초가 됐던 헝다그룹과 관련해 청산 여부 결정 심리를 한 달 연기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청산을 적극 모색하는 채권자가 없어 헝다 측이 먼저 심리 연기를 요청해 내려진 결정이다. 이에 따라 부동산 위기에 대한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중국 전체 GDP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도 축소했다. JP모건체이스는 전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2년 기준 전 세계 GDP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로 전년보다 줄었다며, 1994년 이후 약 30년 만에 비중이 줄어든 것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위기에서 촉발된 신용불량자 급증 추세가 청년 실업 등과 맞물려 중국의 경제 위기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1994년 중국의 GDP 비중이 줄어든 것은 새로운 환율 제도 도입으로 달러화 환산 가치가 하락한 것이지만, 지난해의 경우 중국 경제가 둔화한 영향”이라며 “부동산 가치 하락이 중국 중산층 소비자들을 무너뜨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가 불과 몇 달 전에야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며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