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승구 인턴 기자] 이태원 참사를 수사해 온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최종수사 결과 이태원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 ‘군중 유체화’ 현상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손제한 특별수사본부장(경무관)은 13일 ‘수사 결과발표 브리핑’에서 “많은 인파가 이태원역 등을 통해 세계음식거리 주변으로 밀집했다”며 “사고 당일 오후 5시 이후 인파가 급증해 오후 9시쯤부터 ‘군중 유체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군중 유체화란 특정 공간에 사람들이 밀집하면서 군중 전체가 의지와는 무관하게 물에 휩쓸린 것 같이 움직이는 현상을 뜻한다. 군중 유체화 상태에서는 개인이 조금만 움직여도 전체의 압력이 높아지게 된다. 자기 스스로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고 압력이 높아지면 압축성 질식·뇌손상 등에 이를 위험이 있다.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거리는 폭 3.2m·길이 40m의 협소한 골목이었다. 군중 유체화는 오후 9시쯤부터 세계음식거리 양방향에서 말려드는 인파로 T자형 골목 좌우에서 발생했다.
수사 결과 오후 8시 30분쯤부터 세계음식거리와 T자 삼거리 부근에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특수본은 오후 9시가 지나자 세계음식거리 양쪽 방향에서 인파가 밀려들었다”며 “T자형 삼거리 좌우 모두 군중 밀집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사고 직전에 T자형 내리막길 사이에서 군중 유체화 현상이 심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오후 10시 15분 세계음식거리에 인파가 갑자기 T자형 삼거리 골목으로 떠밀려 내려왔다. 특수본에 진술한 부상자는 ‘대부분 인파에 밀려 강제로 사고 지점으로 가게 됐다. 파도타기처럼 왔다 갔다 하는 현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여러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넘어졌고 뒤에서 넘어오던 사람들까지 넘어지게 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 사고 골목의 군중 밀도는 오후 10시 15분 1㎡당 7.72∼8.39명였다. 10분 뒤 오후 10시 25분에는 1㎡ 공간에 9~10명의 사람들이 몰려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는 1㎡당 8~10명이 밀집하게 되면 군중은 ‘연속적인 신체’처럼 행동하게 된다고 말한다.
수사 자문역할을 한 박준영 금오공대 기계설계공학과 교수는 “피해자 1인 평균 약 224kg∼560kg 무게의 힘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 때문에 10분 이상 저산소증을 겪다가 외상성 질식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누군가 고의로 군중 유체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군중 역학 전문가 밀라드 하가니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박사는 이데일리와의 지난 인터뷰에서 5~6명의 무리가 군중을 밀었다는 의견에 대해 “6명의 개인이 그러한 참사를 일으킬 수도 없고 시도해도 불가능할 것”이라며 “앞서도 언급했듯 군중이 유동성 상태가 되면 충격파가 퍼질 때 누군가 의도적으로 밀친다고 느낄 수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최종 결과 발표에서 손 본부장은 “토끼 머리띠·각시탈·밀어 밀어’등 언론 SNS등에서 제기한 주요 의혹에 대해 수사한 결과, 사고와 연관성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