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5일 이데일리가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 서울에서 개최한 서소문라운지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에 관해 “소수주주가 다수주주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는 자본다수결 원칙과 충돌한다”며 이같이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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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법전주의자’라고 칭한 권 교수는 “자본다수결 원칙에서 어느 주주가 50%+1주의 지분을 가졌다면 유효지분은 100%가 되고 일반주주 유효지분은 0%가 된다”며 “소수주주를 강력하게 보호하겠다는 (상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는 자본다수결의 원칙을 경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주주의 경영 판단으로 소수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점은 다수결이 안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이지만, 소수주주를 강력히 보호하는 건 대주주가 지분에 기초한 영향력을 감소시킬 수 있으므로 자칫 다수결 원칙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회에는 상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일반주주의 이익이 대주주에 비해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지난 2022년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자회사로 분할한 후 상장했을 때 LG화학 주가가 크게 떨어지며 개인 투자자들이 손실을 본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상법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권 교수의 지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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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교수는 대법원 판례를 들면서 이사의 충실의무를 두고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해 회사 이익을 희생하면서 사익을 도모하지 않아야 할 의무”라고 정의했다. 주식회사의 이사는 주식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인 것이지 주주들과의 관계에서 주주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주주는 주식 소유자로서 회사 경영에 이해관계가 있지만 회사 재산 관계에 대해서는 사실상·경제상 또는 일반적·추상적 이해관계만 가질 뿐 구체적이거나 법률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또 “주주는 회사에 출자한 만큼의 지분을 가질 뿐”이라며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는 아니다”라고도 했다.
아울러 권 교수는 상법 개정안이 소수주주 외에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오히려 역차별을 야기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주식회사의 이해관계자는 주주, 임직원, 채권자, 근로자, 지역사회 등 다양하다”며 “명시적으로 주주만을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으로 하는 건 다른 이해관계자를 무시하는 취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언급하며 “사실상 E와 S를 무시하는 처사”라고도 했다.
◇대다수 상법학자, 상법 개정 반대…”명분도 실익도 없다”
같은 날 서울 여의도에서 경제 8단체와 한국기업법학회가 공동 개최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논란과 주주이익 보호’ 세미나에서도 상법 개정안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기조발제를 진행한 토리야마 쿄이치 일본 와세다대 로스쿨 교수는 상법 개정안으로 얻을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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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일본 회사법상 주식회사의 이사는 회사와 위임계약의 법률관계를 맺음으로써 회사에 대한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를 지는 것”이라며 “이사가 주주에 대해 별도의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상법 개정안은 명분이 부족한 건 물론,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않고 개정하더라도 이에 따른 실익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주제발표를 맡은 박준선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법체계(대륙법계)와 완전히 다른 영미법계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해 상법을 바꾸는 건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한국 회사법은 법조문에 규정된 회사와 이사 간 엄격한 위임관계에 근거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반면 영미법계는 판례를 중심으로 신인의무(이사 충실의무 포함)를 인정해 왔다”며 “태생부터 법리 체계가 다르고 향후 법원 판결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