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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 이중섭 100호 박수근…'이건희 1488점' 국현 소장사 다시 써

오현주 기자I 2021.05.07 17:36:01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세부공개
근대작가 중심 회화·판화·한국화 컬렉션
이중섭 규모 박수근 크기…희귀작 대거
100년만에 나온 이상범 '무릉도원도'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만점 시대로"

이중섭의 ‘흰 소’(1953∼1954·왼쪽)와 박수근의 ‘농악’(1960s). ‘흰 소’는 소 그림을 많이 그렸던 이중섭의 작품으로도 매우 드물다. 전해지는 5점 중 한 점으로 이건희컬렉션에 들어 있었다. ‘농악’은 박수근 작품에선 매우 드물다 할 100호에 달하는(162×97㎝) 크기가 시선을 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유영국 187점, 이중섭 104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 여기에 파블로 피카소 112점.

국립현대미술관에 자리잡은 이건희컬렉션 1488점이 그 얼굴을 드러냈다. 한국 근현대미술작가 238명의 1369점, 해외 근대작가 8명의 119점이다. 면면이 가진 장르적 성향도 다채롭다. 회화 412점,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사진과 영상이 8점이다.

7일 이건희(1942∼2020) 삼성전자 회장의 소장 기증미술품을 세부적으로 공개한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들을 한마디로 “동서고금을 망라한 다양성”이라고 정리했다. 그러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품 1만 점 시대에 진입하게 돼 ‘행복관장’임을 실감한다”며 “생애 두 번 다시 만나기 힘든 쾌거”란 소회를 감추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이 회장 유족이 발표한 기증목록이 이건희컬렉션의 ‘거대한 양적 규모’를 세상에 알렸다면, 이날 국립현대미술관이 공개한 세부내용은 ‘비범한 질적 수준’으로 존재감을 확인케 했다.

◇‘양적 규모’ 넘어서는 희귀작·진귀작 퍼레이드

무엇보다 언제부턴가 모습을 감췄던, 혹은 그간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희귀작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소 그림을 많이 그렸던 이중섭(1916∼1956)의 작품으로도 드문 ‘흰 소’(1953∼1954)가 대표적이다. 지금껏 5점 정도 전해진다는 그 ‘흰 소’ 중 한 점이 이건희컬렉션에 들어있었던 거다. 작품은 1972년 이중섭 개인전과 1975년 출판물에까진 등장했으나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이상범의 ‘무릉도원도’(1922·158.6×390㎝). 이상범이 25세에 그렸다고 소문으로만 전해졌던 작품이다. 100년 만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상범(1897∼1972)의 ‘무릉도원도’(1922)도 마찬가지. 갈색바탕에 짙은 녹색을 드리운 가로 4m에 육박하는 이 청록산수화는 직접 본 사람이 없어 눈이 아닌 귀로만 들었던 작품이다.

나혜석(1896∼1948)의 ‘화녕전작약’(1930s)도 있다. 한국근대기 ‘이혼고백서’를 발표한 뒤 엄청난 사회적 스캔들을 일으킨 이후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는 작품은, 수원 고향집 근처의 화녕전 앞에 핀 작약을 소재로 그렸다고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1세대 유화가이자 첫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은, 작품 대부분을 소실해 극소수의 몇 점만이 현전했던 터.

이미 대중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s)도 30년 넘게 잠적해 있던 작품. 김환기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큰 568㎝의 가로가 긴 그림으로, 항아리와 여인, 새와 사슴·꽃 등 김환기의 대표적 도상을 다 품고 있어 의미가 크다.
나혜석의 ‘화녕전작약’(1930s·33×23.5㎝). 대부분을 소실해 극소수의 몇 점만 전하는 나혜석의 극소수 작품 중 한 점이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1914∼1965)의 ‘농악’(1960s)은 또 다른 의미의 희귀작이다. 박수근 작품에선 매우 드물다 할, 100호에 달하는(162×97㎝) 크기 때문이다. 이보단 좀 작지만 역시 그의 작품으로는 흔치 않은 130×97㎝ 크기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도 포함됐다.

여기에 이중섭의 스승이기도 했던 여성화가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인 ‘낙원’(1937), 단 4점만 전해지는 김종태의 유화 중 한 점인 ‘사내아이’(1929) 등도 이름을 올렸다.

굳이 ‘희귀’가 아니라도 한국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줄줄이 이어진다. 김은호의 초기 채색화 정수를 보여주는 ‘간성’(1927)을 비롯해 김기창의 ‘군마도’(1955), 변관식의 ‘금강산그룡폭’(1960s), 박래현의 ‘여인A’(1942), 장욱진의 ‘공기놀이(11937), ‘소녀’(1939), ‘나룻배’(1951) 등이다.

◇이중섭 작품만 104점…내년 ‘특별 개인전’ 꾸려

한 작가의 연대기를 방불케 할 ‘작품 수’가 눈길을 끌기도 한다. 100점을 넘긴 이중섭이 가장 특별하다. ‘흰 소’와 ‘황소’(1950s)를 포함해 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등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모두 옮겨졌다. 100점을 넘긴 다른 작가는 ‘산의 화가’ 유영국으로 회화 20점, 판화 167점을 기증목록에 올렸다.

이중섭의 ‘묶인 사람들’(1950s·10.1×15㎝). 한국전쟁 피란시절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 은지화다. 팔과 다리가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을 빗대 시대상을 표현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1488점의 기증작 대부분을 차지하는 근현대미술품은 195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의 비중이 가장 컸다. 320점으로 전체의 22%를 차지했다. 작가의 출생연도를 볼 때는 1930년대 이전에 출생한 근대작가의 작품 수가 860점에 달해 58%에 기록했다.

해외 거장의 작품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1919∼1920),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1919∼1920), 호안 미로의 ‘구성’(1953),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 등 이미 공개된 7명 작가의 회화 7점 외에 피카소의 ‘도자기’가 무더기(112점)로 기증작 리스트에 올랐다.

◇7월 덕수궁관 일부, 8월 서울관서 본격 대중 만나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을 순차적으로 대중에 내보이는 계획을 세웠다. 당장 7월 덕수궁관에서 여는 ‘한국미, 어제와 오늘’ 전에 도상봉의 회화 등 일부 작품을 선뵌다. 이후 본격적인 공개는 8월 서울관에서 여는 ‘이건희컬렉션 1부: 근대명품’부터다. 이어 12월 ‘이건희컬렉션 2부: 해외거장’에 이어, 내년 3월에는 104점에 달하는 이중섭 작품만으로 ‘이건희컬렉션 3부: 이중섭 특별전’을 꾸린다.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기’.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해외거장의 작품 119점 중 피카소의 도자기가 112점을 차지했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그 사이 덕수궁관에서는 11월 ‘박수근’ 전에 이번 기증작을 대거 내걸 계획이다. 과천관에선 내년 4월과 9월에 상설전을 마련하고, 청주관에서도 내년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이건희컬렉션의 대표작을 심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할 생각이다.

윤 관장은 “이번 기증작으로 볼 때 한국 고미술부터 동시대 서양 현대미술까지 이건희컬렉션이 가진 광폭의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며 “오랜 시간 열정과 전문성을 가미한 컬렉션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어 소장품 중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으로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를 꼽은 윤 관장은 “김환기의 작품 중 가장 큰 대표작”이라며 “경매에 내놓으면 300억~400억원에는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최근 지자체의 맹렬한 유치경쟁을 부르고 있는 ‘이건희 미술품 특별관 건립’과 관련해선 말을 아꼈다. “특별관에 대해선 국립현대미술관이 직접 관여하고 있지 않다”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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