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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충남)=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1400년을 머금은 ‘타임캡슐’이 열렸다. 23일 충남 공주시 공산성. 가로와 세로 약 3m에 깊이 2.6m의 나무 판재를 기둥에 맞춰 만든 대형 목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600년대 백제시대 지하창고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이다.
나무가 썩지 않아 눈으로도 쉽게 목곽고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굴조사를 진행한 이남석 공주대박물관 관장은 “이 목곽고는 상부구조까지 확인할 수 있는 백제 최초의 목조건물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백제유적에서 발굴된 목곽고는 하단 바닥과 50㎝ 이하 벽면만 일부 확인돼 당시 목곽고를 제대로 연구할 수 없었다.
이번에 발굴된 목곽고는 당시의 목재 가공기술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백제시대 건물 복원과 연구 등에 획기적인 자료라는 평가다. 직접 가서 보니 주변 흙의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 나무 틈 사이 점토를 발라 응집력을 높인 백제인들의 손길도 엿볼 수 있었다. 목곽고는 금강변에 위치한 성 안 마을 발굴현장 북쪽에서 확인됐다.
목곽고 내부에서는 백제인이 쓰던 생활용품이 무더기로 나왔다. 복숭아씨, 박씨와 같은 식생활 재료부터 저울용 석제 추, 칠기, 목재망치 등 생활용품이 여럿 출토됐다. 이 관장은 “백제의 생활문화상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라 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기와 조각이 다수 출토되기도 했다. 이로 미뤄 목곽 상부에는 지붕 구조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지붕은 발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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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은 백제의 옛 도읍 왕성이자 백제 멸망의 순간을 간직한 곳이다. 이 성터 밑에서는 백제 멸망기 나·당연합국과의 전쟁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다량의 유물도 쏟아졌다. 목곽고 저수시설에는 나온 철제 갑옷과 옻칠이 된 말의 갑옷이 그것. 대도와 장식도를 비롯해 다량의 화살촉, 철모 등도 확인됐다.
특히 눈길을 끈 건 사람의 두개골이다. 이 관장은 “사람의 두개골만 확인되고 몸통뼈 등은 찾을 수 없었다”며 “왜 이곳에 사람의 두개골만 나왔는지는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전쟁 의례용이 아닌가 싶다”고 추정했다. 이번에 발견된 두개골은 양 측면이 상당 부분 잘린 채 수습됐다. 전쟁 시 적군의 머리를 참수해 머리와 갑옷 등을 함께 묻은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그만큼 전쟁의 흔적이 생생하게 담긴 유적지다.
저수지 주변 건물지는 대부분이 화재로 폐기돼 있었다. 이를 두고 이현숙 공주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나·당연합군과의 전쟁과 같이 상황이 공산성 내에서 전개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봤다. 저수시설에서는 말안장 뒤쪽에 세워 기를 꽂는 용도로 쓰이는 깃대꽂이도 나왔는데 서산 여미리 출토 토기 문양으로만 볼 수 있었던 백제 깃대꽂이가 실물로 확인된 건 처음이다. 60㎝ 길이의 깃대꽂이는 S자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이 학예연구사는 “지금까지 발굴된 백제유적지 가운데 7세기 백제의 무기체계를 가장 많이 알 수 있는 곳”이라며 의미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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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저수시설에서는 2011년 발굴 당시 ‘정관 19년(貞觀十九年·645)’이라는 글자가 적힌 옻칠 갑옷과 말 갑옷이 출토된 바 있다. 올해 이뤄진 제7차 발굴조사에서도 ‘參軍事’(참군사) ‘○作陪戎副’(작배융부) ‘○人二行左’(인이행좌) ‘近趙○’(근조○) 등이 적힌 옻칠 갑옷이 출토됐다. 김삼기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 과장은 “명문에 대한 정확한 판독이 완료되면 저수시설에서 출토된 유물의 역사적 성격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발굴단은 26일부터 내달 5일까지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설명회를 열어 백제유적의 의미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