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까만 알갱이 그득, 피부병까지.. 시흥 '수돗물 이물질'

이종일 기자I 2023.05.22 16:29:52

센트럴타운 등 13개 단지 주민 피해
싱크대·샤워기 등 필터 사용 일상화
필터마다 검은색 알갱이 묻어 나와
"피부질환에 이물질 성분 몰라 불안"

22일 오전 시흥 은계 센트럴타운 A씨의 집 싱크대 수전헤드 필터에 검은색 이물질이 잔뜩 붙어있는 모습(왼쪽). 오른쪽은 이날 오전 10시께 같은 아파트 B씨 집에서 1분가량 샤워기로 뜨거운 물을 틀었을 때 까만 알갱이가 필터에 부착된 모습. (사진 = 이종일 기자)
[시흥=이데일리 이종일 기자] “필터로 수돗물을 거르면 까만 알갱이가 숱하게 나와요. 불안해서 살 수가 없어요.”

22일 오전 10시께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 센트럴타운 아파트 A씨(37·여)의 집. 수돗물 이물질 피해가 있다고 해서 방문한 이 집의 싱크대 수전헤드와 세면대 수도꼭지, 샤워기에는 모두 까맣게 변한 필터가 부착돼 있었다. 하얀색 새 필터와는 천지 차이였다.

부엌 싱크대의 수전헤드 연결부(투명 플라스틱 재질)에 부착된 필터는 새카만 입자가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었다. 샤워기 필터에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까만 알갱이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해당 필터는 3개월가량 사용한 것이다. A씨는 지난 2020년 4월부터 필터를 걸러 수돗물을 사용하고 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센트럴타운 입주가 시작된 2018년 1월 이 집으로 이사했고 당시 7세·3세 아들 2명을 키웠다. 둘째 아들은 이사 온 뒤 가려움증을 호소했고 피부가 건조해졌다. 병원 의사가 피부질환 처방전을 발급해줘 A씨는 현재까지 치료용 보습로션을 사서 아들에게 발라주고 있다.

22일 오전 시흥 은계 센트럴타운 A씨의 집 화장실 수도꼭지에 3개월가량 부착돼 있던 필터(오른쪽)와 사용 전 필터 모습. (사진 = 이종일 기자)
하지만 아이의 가려움증은 잘 낫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20년 들어 아파트 수돗물에서 이물질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고 A씨도 필터를 껴보니 하루이틀 만에 새카만 알갱이들이 걸러졌다. 이때부터 필터 사용이 일상화됐고 둘째 아이의 가려움증은 조금 호전됐다.

A씨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된 둘째는 요즘도 팔 등을 긁고 다닌다. 피부질환이 완전히 낫지 않았다”며 “필터 사용 전까지 이물질이 섞인 수돗물로 아들을 씻기고 밥을 해 먹인 게 너무 미안하고 속상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입주 뒤 아들에게 피부질환이 생긴 것으로 봐서 수돗물 때문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A씨는 “필터로 이물질을 거르지만 100% 걸러지지 않을 것이다”며 “5년간 이러한 문제를 겪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옆 동에 사는 B씨(42·여)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2018년 2월 센트럴타운에 입주한 B씨는 이웃 언니의 말을 듣고 2019년 초부터 필터를 껴서 쓰고 있다.

B씨 집도 A씨와 마찬가지로 수돗물이 나오는 구멍마다 필터가 끼워져 있었다. B씨는 “2019년에는 필터를 낀지 1주일도 안돼 까맣게 변해 필터를 자주 교체했다”며 “지금은 전보다 색깔이 연해졌지만 여전히 까만 알갱이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 “겨울철에 뜨거운 물을 틀면 필터가 더 빨리 까매진다”고 설명했다.

22일 오전 시흥 은계 센트럴타운 B씨 집 싱크대 수전헤드 필터와 화장실 샤워기 필터에 검은색 이물질이 끼어 있다. 해당 필터는 2개월 정도 사용한 것이다. (사진 = 이종일 기자)
B씨는 필터에 이물질이 끼는 것을 보여주려고 샤워기에 새 필터를 넣었다. 뜨거운 물을 틀자 1분도 안돼 필터 곳곳에 까만 알갱이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LH는 아파트 지하에 설치된 열교환기(물을 데우는 장비) 가스켓(고무패킹) 불량자재 등으로 인해 수돗물에서 이물질이 나온다고 보고 있다.

B씨는 “이 알갱이들이 어떤 성분인지 몰라 더 불안하다”며 “은계지구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021년 입주민을 만나 이물질이 묻은 필터를 가져가서 성분검사를 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물질 피해는 A·B씨 집뿐만 아니라 센트럴타운 등 은계지구 13개 아파트 단지(1만3000여가구)에서 나타났다. 센트럴타운은 2018년 4월 첫 이물질 신고가 있었던 곳이고 이어 제일풍경채, 우미린더퍼스트 등 여러 아파트에서 줄줄이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센트럴타운 저수조 바닥에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수두룩했고 물 색깔은 까맣게 변해 있었다.

발생 초기 주민들은 개별 아파트의 문제로 보고 집값 하락 등을 우려하며 쉬쉬했지만 2020년부터 은계지구 상수도관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고 공동 대응했다. 시흥시가 2020년부터 올해까지 은계지구 상수도관을 검사하면서 수돗물에 섞인 상수도관 내부코팅제 박리(벗겨진 조각)를 여러 차례 발견했다.

이런 상황에 시는 수질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며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셔도 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내부코팅제가 섞인 수돗물이 아파트로 유입됐다”며 상수도관 재시공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 5월 시흥 은계 센트럴타운 아파트 배관청소 당시 저수조 등에서 플라스틱 이물질 등으로 인해 검게 변한 수돗물을 투명한 비닐주머니에 담아 놓은 모습. 투명 비닐주머니가 검은색 비닐처럼 보인다. (사진 = 센트럴타운 주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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