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메리츠자산운용이 의결권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와 손을 잡고 인게이지먼트(engagement·주주관여)펀드를 사모로 출시한다.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 일명 `장하성 펀드`를 직접 운용했던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의 두 번째 인게이지먼트펀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게이지먼트펀드는 기관투자가들이 기업 경영에 관여하면서 경영진과 협력해 기업과 주주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행동주의 펀드보다 한 단계 진화된 형태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자산운용은 지난 4일부터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인게이지먼트펀드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모집기간, 모집목표액 등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스튜어드십코드가 도입될 것이기 때문에 인게이지먼트펀드 등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기업이 싫어지면 팔고 나가는 식이 아니라 5년이든 10년이든 기업에 어드바이스(advice)를 해주고 경영진과 협력해 기업과 주주가치를 높이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뿐 아니라 사회를 긍정적으로 개선시킨단 측면에서 담배, 무기, 도박회사 등은 투자하지 않을 방침이다.
기업 경영에 관여하고 참여하는 식의 인게이지먼트펀드에는 의결권 자문기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존리 대표는 “서스틴베스트가 어드바이스하는 기업들 위주로 투자할 것”이라며 “유휴자본이 많은 기업엔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말고 배당을 더 많이 하도록 하는 식의 방안이 제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스틴베스트는 기업 구조 및 경영개선 사항이 많은 종목 위주로 리서치하고 자산운용사를 대신해 인게이지먼트(배당 확대, 자산매각 요구 등) 활동을 대신해준다. 또 지배구조나 책임투자에 관심이 많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마케팅을 하는 역할도 맡는다.
존리 대표는 2006년 라자드자산운용에서 ‘장하성(청와대 정책실장) 펀드’를 직접 운용한 경험이 있다. 이 펀드는 현금성자산, 토지 등 유휴자산 규모가 시가총액 대비 높은 반면 지배구조 문제로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에 투자했다. 당시 5% 이상 지분을 보유했다고 공시한 대한화섬(003830)이 한 달간 250% 상승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 이후엔 주요주주로 공시한 기업의 주가가 하락한 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성과가 부진해지자 2012년 청산됐다. 장하성 펀드는 태광산업(003240)에 대표이사 해임소송을 제기하는 등 투자기업과의 갈등도 컸었다. 존리 대표는 “인게이지먼트펀드는 이전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와는 다르다”며 “기업과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협력하면서 합의하에 기업을 개선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리츠자산운용 뿐 아니라 라임자산운용도 서스틴베스트와 협력해 작년 11월말 출시된 ‘라임 데모크라시 사모펀드’의 이름을 ‘라임-서스틴 데모크라시 사모펀드’로 바꾸고 해외 자금 유치에 나설 예정이다. 이 펀드는 효성(004800), 대림산업(000210)처럼 기업분할 등 지배구조 개선 가능성이 높은 종목에 투자해 연초 이후 수익률이 10%를 넘었으나 설정액은 6억원에 불과하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서스틴베스트가 해외에선 이름이 알려져 있어 해외자금을 유치받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최근 기관투자가로부터 10억원의 자금을 투자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주축으로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는 기관투자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자 운용업계에선 인게이지먼트 펀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서스틴베스트 관계자는 “여타 운용사들도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이 많다보니 문의가 많다”며 “지배구조 관련 지수를 개발하는 방안 등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