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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캐리 청산' 트리거 된 日 금리인상…또 흑역사 되나

정다슬 기자I 2024.08.06 16:27:09

2000년, 2008년에도 BOJ 금리 인상 했지만
경기 위축되며 다시 '제로금리' 정책 회구
시장 예상 깨고 단행한 日7월 금리인상도
글로벌금융시장 폭락 야기했단 비판 커져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7월 31일 금융정책결정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AFP)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일본은행(BOJ)의 7월 깜짝 금리 인상이 엔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는 ‘트리거’가 되면서 BOJ가 또다시 오판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BOJ가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금리 인상으로 시장의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기습적인 ‘깜짝 금리’ 인하

5일 도쿄증권시장에서 닛케이평균지수는 12.4% 내려 역대 최대의 내림폭을 보였다. 다음날인 6일에는 10.2% 상승하며 하락폭을 상당수 만회했으나 여전히 고점에서 17% 하락했고 투자심리 역시 위축된 상황이다.

물론 도쿄증권시장의 하락세는 BOJ의 금리 인상 전부터 시작됐다. 전날 하락세 역시 경제 펀더멘탈에 비해 과도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역사상 최대 하락폭이 촉발된 BOJ의 금리 인상 결정 시점이 과연 적절했느냐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실 BOJ가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 이는 많지 않았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BOJ가 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후에도 시장에서는 “이번 달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다가 7월 30일 금융정책결정회의 첫째 날부터 ‘금리 인상’ 보도가 나왔고 다음 날 31일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의 본격적인 청산이 이뤄졌다. 지난 2일 나온 미국 7월 비농업 고용지표가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밑돌며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에 ‘9월 빅컷’(0.5%포인트 금리인하) 가능성이 커진 것도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가속화하고 글로벌 주식시장의 하락을 부추겼다.

다이와증권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마리 이와시타는 블룸버그통신에 “BOJ는 먼저 미국경제가 침체인지, 연착륙인지 확인한 후에 움직였어야 했다”며 “이제 적어도 9월, 10월까지는 금리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BOJ, ‘금융정상화’ 시도 실패 반복해

이번 BOJ의 결정이 ‘흑역사’를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BOJ가 금융정상화에 나설 때마다 경기침체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BOJ는 2000년 8월 정책금리를 0.25% 인상한 뒤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제로금리’ 정책으로 돌아갔다. 경제 회복세가 미약한 상태에서 금리 인상이 소비와 투자에 부담을 줬기 때문이다.

BOJ는 2006년 3월에도 양적완화 정책을 설정하고선 같은 해 7월과 다음해인 2007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렸다. 이 조치는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불과 1년도 안 돼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가 오면서 역풍을 맞았다. 결국 BOJ는 2008년 10월과 12월 금리를 인하했다.

노부야스 아타고 라쿠텐 증권 일본경제연구센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BOJ는 경제데이터와 시장 앞에서 겸손해야 했다”며 “BOJ가 경제 통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했다는 사실은 BOJ가 데이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 피해 커…정치권에서도 대응 나서

특히 이번 주가 급락은 개인투자자의 타격이 컸다. 일본정부가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 개편 등을 통해 개인들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닛케이)가 인터넷증권사 5개와 대형증권사 5개의 NISA 투자 현황을 취합한 결과에 따르면 신NISA가 도입된 올해 1~6월까지 개인투자자들의 NISA 투자규모는 7조 5000억엔(67조원)으로 전년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NISA를 통해 금융주에 주로 투자한 한 남성은 300만엔이었던 이익이 40만엔으로 줄어들었다며 아사히신문에 “NISA를 하도록 해 주식시장에 돈이 흘러가게 해놓고 급한 금리 인상으로 주가를 급락시키는 건 너무하다. 손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개인투자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BOJ의 금리 인상이 중앙은행의 독립적 판단이 아닌 정치권 압력에 의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번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앞두고 여당인 자민당에서부터 “엔화가 너무 싸다”며 금리 인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예상을 빗나간 시장의 동요에 일본 정가에서도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재는 이날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며 “긴장감을 가지고 (시장을) 바라보는 동시에 BOJ와 직접 연계해 경제재정운영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이날 회동을 하고 국회를 하루 개원해 우에다 총리를 출석시키기로 했다. 입헌민주당의 아즈미 쥰 국회대책위원장은 “정책적으로 틀렸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와 다른 금리 있는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 일본은행 총재에게 확실하게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일본 재무성과 금융청, BOJ는 이날 ‘국제금융자본시장 관련 3자 정보교환’ 회의를 긴급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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