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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명품 수요처로 꼽혔던 중국이 코로나19 봉쇄 사태를 겪으면서 판매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미국은 명품업계의 타깃 시장으로 떠올랐다. 이에 명품업체들은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LA)와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중부와 남부의 중소도시에 매장을 여는 등 미국 공략을 강화했다.
미국 명품시장은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은 못 가고, 일상에서도 거리두기 등으로 소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늘어난 저축과 정부의 지원금에 힘입어 급성장을 거듭했다.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명품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22% 수준이었지만, 작년 33%로 뛰었다.
그러나 올 들어 미국 명품시장의 성장은 정점에 도달했으며, 경제가 둔화하면서 소비자의 선택은 더욱 까다로워졌다고 FT는 지적했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 마이테레사의 마이클 클리거 최고경영자(CEO)는 “팬데믹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보복소비를 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며 “완전히 미쳤던 당시와 비교해서 미국의 명품시장은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명품 브랜드 상당수가 최근 미국에서 실적 부진에 직면했다. 루이비통, 크리스찬디올 등을 보유한 글로벌 명품업계 1위인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의 지난 2분기 미국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 줄었다. 이에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3% 증가하는데 그쳤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 24% 성장했던 것에 비하면 1년 만에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특히 구찌와 발렌시아가 등을 소유한 글로벌 명품업계 2위인 케링의 지난 2분기 북미지역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3% 급감했다. 케링은 부진한 실적에 경질성 인사를 단행, 구찌의 전성기를 이끈 마르코 비차리 구찌 글로벌 회장 겸 CEO를 오는 9월 교체키로 했다.
또 까르띠에, 몽블랑 등 브랜드를 보유한 글로벌 명품업계 3위인 리치몬드그룹의 지난 2분기 미국 매출도 2% 줄었으며, 이밖에 버버리와 프라다도 각각 8%, 6%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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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인앤드컴퍼니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명품시장은 전년보다 20% 성장한 3450억유로(약 484조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올해 성장률은 최소 5%에서 최대 12%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노동시장이 냉각되고 임금상승이 둔화하며 경기침체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소비자들이 구매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게 이유다. 실제 미국인의 국내·외 소비를 추적한 신용카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6월 사치성 소비 지출액은 전년동기대비 19% 줄었다.
미국 소비자들이 보복소비를 멈추고 있는 와중에도 ‘버킨백’으로 유명한 에르메스의 지난 2분기 북미지역 매출은 21% 상승했다. 이는 구찌 등 다른 경쟁사의 미국 매출 성장 둔화 추세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소득 변화에 민감한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명품의 판매는 줄었지만, 경기의 영향을 덜 받는 부유층 소비자의 충성심이 강한 최고급 브랜드는 여전히 미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베인의 페데리카 레바토 파트너는 “미국에서 30% 성장하는 브랜드가 있지만, 30% 감소하는 브랜드도 있다”며 “소비에 목마른 열망형 소비자에게 노출된 스트리트웨어, 미니백, 보급형 스니커즈 등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 브랜드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