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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정부 및 재계 등에 따르면 법무부는 전날(20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엘리엇 사건 중재판정부가 엘리엇 측 주장 일부를 인용해 우리 정부에 5358만6931달러(약 690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손해배상금 7억7000만달러(약 9917억원) 중 약 7%가 인용된 것이다. 중재판정부는 여기에 2015년 7월16일부터 판정일까지 5% 연복리의 이자를 지급할 것을 명했다. 정부가 엘리엇에 지급해야 하는 배상원금, 지연이자, 법률비용을 모두 합한 금액은 13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엘리엇은 2015년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 복지부가 국민연금에 찬성 투표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2018년 7월 ISDS를 통해 국제중재를 제기했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했던 엘리엇은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로 제시된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합리하다며 합병을 반대한 바 있다.
이번 결정이 자본시장법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등의 혐의로 기소된 부당합병 재판에 미칠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검찰은 당시 제일모직이 2015년 8~9월 합병 회계처리 과정에서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정당화하기 위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고자 자회사인 바이오계열사 가치를 부풀려 평가한 것으로 조사했다.
국제통상전문가인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대표변호사는 “엘리엇이 ISDS에서 일부 승소한 만큼 불법합병 혐의를 놓고 심리 중인 재판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중재 전문변호사는 “이번 엘리엇 주장이 얼마나 많이 인용됐느냐가 향후 공소 유지 및 재판 진행 과정에 관건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실제로 재계에선 이번 소송에서 엘리엇의 청구금액 중 7%만 인용된 만큼 우리 정부가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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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향후 대응에도 관심이 쏠린다. 법무부는 결정문을 분석한 후 구체적인 대응 방침을 밝힐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3000억원 배상이 결정된 론스타 ISDS처럼 불복 절차를 진행할 공산이 크다.
실제 엘리엇은 이날 입장문에서 “본 건 사실관계는 대한민국의 법원 및 검찰에 의해 이미 지난 수년간 입증되고 널리 인정됐다”며 “엘리엇은 대한민국이 이번 중재판정 결과에 승복하고 중재판정부의 배상 명령을 이행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법조계에서 정부의 구상권 청구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전 정부이긴 하지만 국가구조론 상 현 정부가 전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건 적절하지 않으며 사례도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