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지혜 인턴 기자] 고물가 영향으로 노인들에게 무료로 따뜻한 밥 한 끼를 제공하는 ‘무료급식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전 10시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종로 2가 탑골공원 앞에는 노인들의 긴 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바로 오전 11시 30분부터 열리는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맨 앞줄에 서 있던 김용대 씨(85)는 경기도 안양에서 이곳까지 방문했다. 김 씨는 "선착순이기 때문에 오전 9시부터 와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거리가 멀긴 하지만 여기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따뜻한 밥 한끼 먹는게 하루 중 유일한 낙"이라고 이야기했다.
원각사 무료급식소의 10년 넘은 단골인 이일광(91세)씨는 "옛날에는 여기서 무료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국밥 하나 사 먹고 그랬었다"면서 "그런데 이제는 국밥 하나에 만원씩 하니까 그냥 여기서 점심 한 끼 먹고 저녁은 굶는다"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스냅타임 기자가 종로 2가 탑골공원 근처 국밥집을 돌아다닌 결과 국밥 한 그릇 당 평균 가격은 9500원이였다. 탑골공원에서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 모씨(62)씨는 "식자재 값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서 "여기에다 가스비 폭탄까지 맞으니 우리도 살아가기 힘들다"라며 토로했다.
실제 2022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1%로 지난 2021년(2.5%)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가스요금 또한 2022년 4차례에 걸쳐 올랐다. 주택 및 산업용 기준(도시가스)으로는 메가줄(MJ·에너지의 국제 단위)당 5.47원이 인상된 것이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무료급식소를 방문하는 노인들의 수가 증가하자 무료급식소 운영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고물가 영향으로 운영비는 부족한데 후원금마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원각사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28일 "무료급식소를 방문하는 노인분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오히려 후원금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면서 "여기서 5년 넘게 봉사를 하고 있지만 요새 물가가 너무 올라서 식단 짤 때마다 골치가 아프다"라고 토로했다.
다른 무료급식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경기 화성시에서 ‘만나급식소’를 운영하는 박경숙 사무장은 "2021년 때랑 비교하면 현재 후원금이 2배 정도 줄어든 것 같다"면서 "전기료부터 가스비까지 감당이 안될 정도이지만 반찬 퀄리티는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순수 민간 기금으로 운영되는 무료급식소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중구에서 민간 무료급식소를 운영 중인 김 모 씨는 "우리 급식소는 다른 곳에 비해 규모가 작다 보니까 최근에 상황이 더 힘들어졌다"면서 "밥 대신 빵을 주거나 고기 반찬 대신 두부나 나물 위주로 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찬에 불만을 가지는 노인들은 없었냐는 질문에 김 씨는 "오히려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이렇게라도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어떻게라도 노인분들에게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고 싶지만 운영비가 부족해서 머지않아 문을 닫을 위기다"라며 탄식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무료급식소 전국 255곳이 운영을 종료했다. 순수 민간 기금으로 운영되는 무료급식소 현황은 별도로 집계도 되지 않는다.
정순돌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무료 급식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공공요금 세금 감면 혜택 대상을 논의하고 선정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하지만 순수 민간 기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급식소까지는 정부의 도움을 받기가 힘들 수 있기 때문에 사회복지공동 모금회와 같은 민간단체들의 후원을 적극적으로 장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