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사측은 연간 10만대 생산 규모의 공장을 설립한 뒤 향후 증설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노조가 고용 안정을 이유로 연간 20만대 생산 규모로 공장을 설립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전기차 연간 생산량을 올해 35만대에서 2030년 144만대로 대폭 확대해 ‘글로벌 전기차시장의 퍼스트무버(선도자)가 되겠다’는 현대자동차그룹 전동화 전략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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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기아 노사는 최근 기아 화성공장(오토랜드 화성)의 PBV 전기차 전용 생산공장 신설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했다.
기아는 지난 5월 국내 전기차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기아 화성공장에 국내 최초 PBV 전기차 전용 생산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기아의 PBV 전기차 전용 생산공장은 약 6만6116㎡(2만평)의 부지에 수천억원을 투입해 내년 상반기 착공 후 2025년 하반기 중형급 사이즈의 PBV 전기차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PBV 전기차 전용공장은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공장으로 구축된다. 전기차 기반의 PBV는 다양한 형태와 기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친환경 다목적모빌리티로 자율주행기술과 결합하면 로보택시, 무인화물 운송 등 미래 이동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기아는 양산 시점에 연간 10만대 PBV 전기차 생산 능력을 확보한 뒤 향후 시장 상황에 맞춰 최대 15만대까지 증설해 글로벌 PBV시장 1위를 달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현대차그룹도 2030년까지 국내 전기차 연간 생산량을 144만대까지 대폭 확대해 글로벌 전기차시장의 판도를 뒤바꾸는 퍼스트무버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기아 노조가 고용 안정을 위해 연간 20만대 규모의 공장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차질을 빚고 있다. 기아 노사는 PBV 전기차 전용 생산공장 신설 계획 발표 후 최근까지 5차례 본회의와 10차례 실무협의를 진행했지만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기아 노조는 전기차 생산으로 조합원의 고용이 위협받는 만큼 △PBV전기차 생산 규모 연간 20만대 △모듈공장 사내 유치 △플라스틱·차체공장 사내 이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기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대당 부품 수가 내연기관차의 3분의 2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어 일자리도 덩달아 축소된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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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반대로 국내 전기차 생산 공장 신설이 지지부진한 것과 달리 미국 전기차 전용 생산 공장 설립은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생산공장(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HMGMA) 신설 계획을 밝힌 후 5개월 만인 지난 10월 기공식을 열었다. 이 공장은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공장 건설에 착수해 2025년 상반기부터 전기차 양산에 들어간다.
업계에서는 이런 노조의 이기주의가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자국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등 해외의 경우 세제혜택 등을 통해 적극적인 리쇼어링(해외 제조시설 본국 회귀)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국내는 강성 노조가 버티고 있어 기업들의 적극적인 리쇼어링이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기아 노조는 사측이 평생사원증 제도에 대한 혜택을 축소하자 이에 반발해 부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평생사원증 제도는 25년 이상 근속한 퇴직자에 한해 2년마다 평생 할인된 가격에 차량을 제공받는 것으로 기아차 퇴직자는 차량 가격의 30%를 할인받는다. 결국 장기근속 퇴직자 전기차 가격 할인(25%)을 2025년부터 적용한다는 내용을 새롭게 포함하면서 노조가 부분 파업을 철회했지만 ‘소비자를 볼모로 기득권을 챙기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 노사가 연내 PBV전기차 전용 생산공장 신설 관련 합의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사가 이른 시일 내에 합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