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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미 정부로부터 동맹국들에도 자국과 같은 수준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타진이 있었다며, 이에 일본 정부는 어떤 규제를 도입할 수 있는지 등 내부 논의를 통한 조율 작업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국과 EU의 동향도 살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국과 유럽 역시 같은 요구를 받았음을 시사한다.
미국이 동맹국에 도입을 촉구하고 있는 규제는 지난달 7일 발표한 조처다. 당시 미 상무부는 중국 반도체 생산기업에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나 설계 소프트를 판매할 경우, 또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AI)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수출할 경우 수출관리법에 따른 규제를 개정해 허가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반도체 관련 핵심 인력 등도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사실상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미 정부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소통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의 의견도 수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앨런 에스테베즈 미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도 지난달 27일 “일본과 네덜란드 등 동맹국을 상대로 반도체 관련 대중 수출 통제에 동참토록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동맹국의 참여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힌바 있다.
미 정부가 이처럼 동맹국들을 압박하게 된 것은 대중 제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여러 국가의 연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상무부 차관보를 지낸 케빈 울프는 “미국이 일본 등 동맹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나선다면 규제 효과가 높아질 뿐 아니라, 동맹국 간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첨단기술 공동 개발 등도 진행하기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 산업계에서 “우리만 중국에서 매출을 잃는 건 불공평하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닛케이는 설명했다. 현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대만과 한국이 각각 약 20%, 일본이 15%, 미국이 12%를 차지하고 있다. 미 반도체 업계에선 대중 규제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뒤쳐진 점유율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반도체 업계도 제재 확대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미국과 같은 규제가 도입되고 중국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이 정체되면, 일본이 그동안 강점으로 여겨온 고부가가치·최첨단 제조 장치에 대한 수요가 약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미 정부의 편가르기식 요구가 거세질 경우 자칫 동맹국들 입장에선 중국과 미국 중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닛케이는 “일본 반도체 산업에서도 미중 대립의 영향이 더욱 강해질 전망”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