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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앞다퉈 ‘빅테크 모시기’에 나서자 뒷말이 나옵니다. 국내 스타트업들이 빅테크와 협업하는 기회를 얻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지만, 국내 테크 기업들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비판도 큽니다. 그럴 것이, 요즘 가장 뜨거운 초거대 인공지능(AI)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초청해 스타트업 간담회를 열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다음 달 구글과 함께 ‘대한민국 인공지능 위크 AI for Korea 2023’을 3일간 열기로 했죠.
그런데 오픈AI와 구글은 현재 네이버, 카카오, LG, SKT, KT 등과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놓고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챗GPT는 언어처리 AI 모델(LLM·Large Language Model)에 기반한 대화형 서비스인데, 세계적으로 자체 모델을 개발하는 나라는 미국, 중국, 우리나라뿐입니다.
당장 네이버가 8월 말 ‘하이퍼클로바X’를 선보일 예정이죠. 그런데 이 모델은 나 홀로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특정 모델을 택한 뒤 파인튜닝(Fine-tuning·미세조정)하는 방법으로 생태계를 형성합니다. 이를테면, 업스테이지의 애스크업(AskUp)은 오픈AI 모델 위에서 이뤄지는 채팅 봇이고,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오픈AI, 네이버, 자체 언어모델 등 3개 모델을 이용해 글 초안을 작성해주는 서비스를 합니다.
그렇기에 정부가 특정 기업과 단독 행사를 잇따라 여는 것은 국내 스타트업들에게 빅테크 모델을 사용하도록 홍보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이런 비판이 지나친 것일까요?
물론, 정부는 이런 행사들을 통해 오픈AI가 만든 펀드에 국내 스타트업이 투자받도록 돕거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구글과의 AI 위크를 통해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구글 클라우드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걸 도울 수도 있습니다. 청년 인재 양성 분야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장관이 축사가 아니라 직접 대담자로 나서 80여 분 동안 행사를 주도하는 모습이나, 다른 부처가 행사를 한 지 한 달 만에 또 다른 빅테크와 행사를 여는 건 지나친 면이 있습니다. 신산업을 둘러싼 부처 간의 주도권 다툼으로 보일 여지도 있고요.
국내 테크기업들도 생각하는, 균형 잡힌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픈AI나 구글만 띄우는 것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국내 AI 모델 개발 기업들을 위한 통 큰 투자나 생태계 활성화를 돕는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AI 주권과 데이터 주권은 약화할 겁니다. 지금은 국내 검색 시장을 네이버가 주도하지만, 오픈AI의 챗GPT, MS의 빙챗, 구글 바드가 시장 1위로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화형 AI는 ‘언어’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 서비스 외에도 로봇산업 같은 신성장 동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정부가 네이버나 카카오, SKT, KT와 같은 국내 기업의 AI 행사에 참가해 직접 축하해 줄 순 없을까요? 오픈AI나 구글과 행사를 했던 것처럼요.
쉽진 않아 보입니다. 현대차 공장이나 삼성전자 공장을 방문할 때와는 다른,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SW)를 대하는 어색함과 특혜 논란 때문입니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 산업은 뭘까 생각해 보면 답답함도 듭니다. 우리나라가 초거대 AI 강국이 된다면, 엔비디아처럼 기업 가치가 1조 달러를 넘어서는 AI 서비스 기업, AI 반도체 기업, AI 로봇 기업이 생길 가능성도 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