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NN이 입수한 9페이지 분량의 안내 자료에 따르면, 업체들은 최저 7만5000달러(약 1억2000만원)에서부터 최고 20만달러(약 3억원)까지 3가지 비용이 드는 3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20만달러짜리에는 행사 당일 기업 부스 설치, 로고 배치, 기업 브랜드가 새겨진 간식 또는 음료 제공,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와의 브런치 참석, 백악관 기자단과의 교류 기회, 백악관 개인 투어 및 이벤트 티켓 150장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부활절 행사의 스폰서 모집에 나선 곳은 지난 2013년 공화당 보좌진이 설립한 회사인 하빈저다. 이 회사는 안내문에서 백악관 부활절 행사의 스폰서 업체로 참여하면 “행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자금과 활동, 선물 등을 지원하는 대가로 브랜드의 가시성과 국가적인 인지도를 얻을 수 있다”고 홍보하며 “역사의 일부가 되라”고 후원을 독려했다.
백악관의 부활절 달걀 굴리기 이벤트는 1878년 러더퍼드 B. 헤이스 행정부 시절 시작된 행사로, 백악관이 대중을 상대로 펼치는 가장 큰 연례 행사 중 하나다. 어린이 수천명이 백악관 뜰에서 삶은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 굴리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이 행사의 자금은 납세자의 세금 대신 미국 달걀위원회가 수 만개의 계란을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충당해 왔다. 행사 모금액 전액은 1961년 당시 영부인이던 재클린 케네디가 설립한 비영리 사립교육기관인 ‘백악관 역사협회’로 전달한다. 미국 달걀위원회가 지원하던 방식 대신 하빈저가 후원 기업 물색에 나서면서 윤리적, 법적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법률 고문실에서 수석 윤리 변호사를 지낸 리처드 W.페인터 변호사는 안내 자료를 본 뒤 CNN에 “내가 있었다면, 30초 정도면 거부권이 행사됐을 것”이라며 “우리는 돈을 걷기 위해 사방에 로고를 붙이는 축구 경기장처럼 (백악관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백악관이 사기업에 그들의 브랜드를 홍보하도록 허용하고, 이를 통한 수익금을 사설 비영리 단체로 유입되게 하는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공직자로서의 의무와 권한을 사익 등을 위해 이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11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연방정부 구조조정의 총대를 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나란히 백악관 경내에서 테슬라 ‘모델S’에 시승하고, 차량을 구매해 논란이 일었다. 현직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특정 상품을 홍보한 것은 전례가 없을 뿐더러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테슬라 홍보 행위가 후원자에 대한 특혜로 비칠 수 있다고 미 언론들은 입을 모았다. 취임 직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내 멜라니아 여사가 자신의 이름을 딴 밈코인(인터넷 밈에서 유래했거나 재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자산)을 각각 출시하고 홍보에 나서 이해 충돌 논란을 촉발했다.
도널드 셔먼 ‘워싱턴의 책임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CREW)의 수석 고문은 “백악관과 관련된 이런 일은 처음 본다”면서 “부활절 행사에 기업 후원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백악관이 영향력을 이용해 노골적으로 요청하는 것은 본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이전에는 부활절 행사를 놓고 기획에 참여한 관계자들과 백악관 법률고문실 간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다고 CNN은 전했다. 대표적인 예가 코카콜라의 후원품 노출 여부다. 여러 행정부는 백악관 변호인단이 정한 브랜드 노출 제한 규정을 들어 코카콜라가 기부한 다사니 생수를 코카콜라 브랜드를 표시한 냉장고에 보관해 제공할 수 없다고 통보한 바 있다.
행사 기획에 참여했던 한 전직 공무원은 “과거 법률고문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면서 “때로는 너무 지나치기도 했지만 그들의 목표는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