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14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집중투표제 도입 시 이사회 구성 주요 기업의 시뮬레이션’ 보고서를 발간하고, 상법개정안 도입에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번 조사는 삼성전자(005930)와 현대차(005380), SK(034730), LG전자(066570), 기아차(000270), 한화(000880), SK이노베이션(096770), 현대중공업(009540), 현대모비스(012330), 롯데쇼핑(023530) 등 매출액기준 국내 상위 10대 기업(공기업, 금융기관 제외)을 대상으로 상법 개정안 도입 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다.
|
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가 도입되면 외국계 투자기관이 연합할 경우 매출액 상위 10위 기업중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기아차, SK이노베이션, 현대모비스 등 6곳의 감사위원을 모두 선임할 수 있게 된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는 감사위원 이사를 뽑을 때 소액주주가 선발하는 감사위원을 늘리기 위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감사위원은 기업당 3~5명 수준이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되면 10대 기업 중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기아차, SK이노베이션, 현대모비스등 6곳은 총수와 임원 등 내부자, 전략적 투자자, 연기금 등 국내 기관 투자자의 의결권을 모두 합해도 외국 기관의 의결권 지분에 못 미친다.
현재 삼성전자의 경우 내부자, 전략적 투자자, 국내기관 등의 지분을 모두 합하면 29.7%인데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가 도입되면 이 비중이 17.5%로 떨어진다. 반면 외국 기관의 의결권 지분은 도입 전후 모두 28.7% 그대로다. SK㈜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국내 관련 지분이 56.2%에서 15.6%로 뚝 떨어지게 된다. 한화, 롯데쇼핑도 사라지게 되는 의결권 지분이 40% 이상이다.
김윤경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감사위원 선출 등 의결권 대결에 있어 현실적으로 대주주 등 국내 투자자들은 3% 의결권 제한을 크게 받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삼성전자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4개사는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외국계 투자기관이 선호하는 이사 한 명 이상이 이사회에 포진할 가능성이 높다. ‘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두 명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株主)가 보유한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고, 이를 특정 후보에게 몰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경연은 과거 칼 아이칸 사태의 사례를 들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 아이칸은 지난 2006년 다른 헤지펀드와 연합해 KT&G 주식 6.59% 매입했다. 당시 KT&G는 집중투표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칼아이칸은 이를 악용해 헤지펀드 측 사외이사 1인을 이사회에 진출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칼아이칸은 KT&G에 부동산 매각, 자사주 소각, 회계장부 제출, 자회사인 한국인삼 공사의 기업공개 등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KT&G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총 2조8000억 원 가량의 비용을 투입했고, 칼아이칸은 12월 주식매각 차익 1358억원과 배당금 124억원 등 총 1482억원의 차익을 실현하고 떠났다.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2012년 BMC소프트웨어 지분 9%를 취득 한 후 이사 10인 중 2인을 자기 사람으로 교체하고, 회사를 사모펀드로 넘긴 사례도 있다.
신석훈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최근 헤지펀드들은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소지분만을 확보하고 자기 사람 1~2명만을 이사회 진출시킨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회사의 주요 자산이나 사업을 매각하도록 해 주가를 상승시키고, 차익을 취득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