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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글로비스 판결, 상법 개정안 시행된다면?

김현아 기자I 2011.05.26 18:59:10

1심과 달리 '사업기회 유용금지' 위법 가능성 커
전문가들 "이사회 공개안되고 심리조차 안해 다르게 판단됐을 것"
개념이 추상적이고 손해배상액 산정 난감..이후 판례 주목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2012년 4월 이후 법원이 현대차 주주들이 정몽구 회장 등 현대차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글로비스 부당지원 소송을 판결했다면 같은 판결이 나올까?

26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개정상법의 주요내용과 기업대응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판결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입을 모았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되는 상법 개정안에는 '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금지'라는 조항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서울지방법원민사합의21부는 현대차(005380) 주주들이 정몽구 회장 및 김동진 전 현대차 부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측은 총 826억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하면서, '계열사 부당지원'은 인정했지만 정 회장 등의 '회사기회 유용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개정 상법이 시행되는 내년 4월 이후라면 회사기회 유용 혐의까지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지적. 전문가들은 법원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면서도, '미래 사업기회'라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손해배상액 산정에 있어 판례를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크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글로비스 판결에서 '기회유용 혐의' 인정가능성 커

구승모 법무부 상사법무과 검사는 "최근 H사(현대차) 관련 1심 판결에서 법원은 (글로비스 설립이 현대차의) '현존하고 구체적인 사업기회'가 아니라고 했는데, 소송 당시는 이사의 일반적인 충실의무에서 해석론적으로 도출한 판결이어서 내년 4월부터 시행되는 개정법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지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고창현 김앤장 변호사도 "미국에서도 최근 '회사의 기회유용 금지'에 대해 더 넓게 인정되는 상황이고, H사 주주대표 소송의 경우 개정 상법 시행 전이어서 그 판결이 유지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언주 에쓰오일 법무총괄 상무는 "H사 사건은 애당초 이사회에 공개안되고 심리조차 안한 경우에 해당돼 (1심판결처럼) '구체적이고 현존하는 사업기회'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문제없다는 판결이 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손배액은 어떻게?...재계 '난감'

내년 4월부터 시행되는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는 이사회의 승인없이 현재 또는 장래에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돼 있다. 아울러 손해를 발생시킨 이사와 승인한 이사는 연대해 손해를 배상해야 하며, 이로 인해 이사 또는 제3자가 얻은 이익은 손해로 간주한다고 돼 있다.

현대차 주주대표 소송의 경우 최악의 경우 정몽구 회장과 김동진 전 부회장이 이사(정몽구 회장)나 제3자(글로비스의 대주주인 정의선 부회장)가 얻은 이익을 현대자동차에 배상해야 한다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차 주주대표 소송 당시 원고측은 1조926억원의 손해배상액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회사기회 유용'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손해배상액은 826억원으로 줄어든 바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회사기회 유용 금지 부분에서 손해배상액 판정이 아주 어렵지 않느냐"면서 "기회유용시 바로 이익이 나는 게 아니고 손해가 났다가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고 하는데, 시행령 상에서 손해배상액에 대한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냐"고 질의했다.
 
결국은 판례..법무부, 다음주 상법 시행령 위원회 발족

그러나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시행령이 아니라 결국은 법원 판례를 봐야 한다고 밝혀 재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흥철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지난 1심 판결에서 H기업 판례가 가장 협소한 수준으로 '회사의 기회유용'을 해석한 것이고, 이는 미국에서는 폐지된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상법에 처음 도입되는 제도여서 법정 안정성이 떨어지니 처음부터 법리를 넓게 하면 혼란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사의 회사 기회유용과 관련, 손해액을 산정하는 게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면서 "결국 해당 사업이 성공해서 그 이사가 이익을 다 가져갔을 때 문제가 될 텐데, (개인적으로는) 주가평가 방식과 비슷하게 해서 몇 년간 해보고 앞으로의 이익에서 평가할인을 금액으로 나누는 등의 판례가 나오지 않을 까"라고 말했다.
 
구승모 검사는 "국회의 큰 입법 방향은 우리나라 기업의 이사들이 자기 거래를 통해서 하는 불법성이 심하다는 인식 속에 기업의 효율성이 좀 떨어져도 이를 개선하자는 인식이었다"고 설명했다.
 
구 검사는 "회사 기회유용 금지가 너무 추상적이라는데, 이는 기본법으로서의 상법이 지니는 입법기술적인 문제도 있다"면서 "향후 판례가 축적되면서 구체화되는 걸 기다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법무부는 다음 주 '상법시행령 개정안 위원회'를 발족시켜 '준법지원인제도'를 가다듬을 예정이다. 구승모 검사는 "준법지원인제도의 경우 도입대상 상장사의 범위와 준법지원인 자격 등이 논란인데, 위원회 논의와 공청회 등을 통해 자산규모를 2조원 이상135개사(7.5%)로 할 지, 5000억원 이상(17.7%)로 할 지 등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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