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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유럽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ECB가 팬데믹 긴급 매입 프로그램(PEPP)을 당초 계획보다 일찍 중단해 대차대조표 축소를 가속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마도 이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ECB) 집행위원회 내부적으로 논의와 검토 과정에서 나오게 될 문제”라며 “우리는 이 제안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CB는 지난해 긴축을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국채 등 장기 채권을 매입하는 1조 7000억유로 규모의 프로그램은 여전히 만기가 돌아오면 재투자하고 있다. 당초 내년 말까지 프로그램을 유지키로 했지만,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프로그램 종료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이다.
이는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 완화로 전환할 조짐을 보이는 것과 대비되는 움직임이다. FT는 “ECB가 그간의 기준금리 인상을 넘어 통화정책을 더욱 긴축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ECB가 PEPP 조기 종료를 검토하게 된 것은 일부 매파(통화긴축 선호) 성향의 위원들이 “프로그램 시행 당시 명분이 됐던 팬데믹 위기가 분명히 끝난 데다, 추가적인 통화 부양책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려는 노력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며 재투자 중단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내년 ECB가 금리인하로 돌아설 때를 대비해 양적 긴축을 완료해 정책적으로 엇박자가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게 이들 위원들의 주장이다.
시장에선 ECB가 내년 4월 또는 6월에 금리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10월 물가상승률이 전년 동월대비 2.9%로 2021년 7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오는 30일 공개되는 11월 물가상승률도 전년 동월대비 2.7%로 낮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유럽 경제가 둔화하고 있어 PEPP 조기 종료에 반대하는 위원들도 적지 않다. 일부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성향의 위원들은 “이탈리아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이 성장 정체 및 높은 수준의 부채로 불안이 커지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 양적 긴축에 나서는 건 “1차 방어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탈리아 은행 유니크레디트의 프란체스코 마리아 디 벨라 채권 분석가는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ECB가 내년 PEPP 재투자의 일환으로 1800억유로(약 256조원) 상당 채권을 매입할 것으로 추정하며 “ECB의 양적 긴축으로 시장이 흡수해야 하는 순공급량이 증가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ECB가 PEPP 포트폴리오를 중단하기로 결정하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는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ECB가 채권 매입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사의 옌스 아이젠슈미트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내년 4월부터 6개월간 채권 재투자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고, 10월에 완전히 종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ECB의 채권 포트폴리오는 내년 말엔 870억유로, 2025년 말에는 2580억유로가 각각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