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은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앞은 하교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이모(16)양은 ‘9시 등교 자율화’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같이 반문했다. 이양은 “주변 친구들 모두 9시 등교에 생활 패턴이 맞춰져 있어 아침 일찍 등교해야 하는 상황이 걱정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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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취임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취임 후 1호 공문으로 9시 등교 자율화를 선언한 가운데 학부모·학생들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21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경기도 초·중·고교 2466곳 중 2436곳(98.8%)이 9시 등교제를 실시 중이다. 9시 등교제는 2014년 진보 성향의 이재정 전 경기도교육감이 “아이들의 수면권을 보장하겠다”며 만든 제도다. 임 교육감은 지난 1일 “등교 시간 자율은 새롭게 바뀌는 경기교육에서 추구하는 자율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9시 등교 자율화를 지시했다. 학생·학부모·교직원 등의 의사를 종합해 학교별로 등교 시간을 결정하라는 취지다.
학생·학부모·교직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2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따르면 도내 초·중·고교 120곳을 조사한 결과 69곳은 9시 등교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초·중·고교 50곳은 의견수렴 과정에 있거나 논의가 아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나머지 1곳만 교사 회의를 통해 8시 50분으로 등교 시간을 앞당겼다. 의견수렴 과정에 있는 초·중·고교 역시 9시 등교 유지 입장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학부모·교사 “9시 등교 만족”
학생들은 수면 부족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를 가장 우려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모(15)군은 “오전 9시 등교 이후 하교해 학원을 다니는 생활 패턴에 익숙해 있다”며 “8시까지 등교하려면 6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너무 괴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조모(16)양도 “8시에 등교하게 되면 다들 엎드려 잘텐 데 굳이 왜 등교시간을 앞당기려는지 모르겠다”며 “오히려 9시 등교를 유지하면 조는 학생 없이 수업을 더 잘 들을 것 같다”고 했다.
학부모나 교사들의 반응 역시 좋지 않다. 경기도 일산에서 중3 딸과 초6 아들을 키우는 박모(45)씨는 “아침밥도 제대로 못 먹이고 학교에 보내면 마음이 아플 것 같다”며 “잠을 제대로 자야 키도 쑥쑥 크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경기도 한 중학교 교사 이모(27)씨는 “9시 등교제 자율화는 사실상 0교시 부활”이라며 “옆 학교가 0교시를 시행하면 주변 학교들은 경쟁이 붙어 도미노 현상처럼 0교시를 실시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일부 맞벌이 학부모들은 긍정적인 뜻을 밝히기도 했다. 초5 아들은 키우고 있는 최모(41)씨는 “항상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출근하면서 마음에 걸렸다”며 “등교 시간을 앞당기면 편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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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단체는 9시 등교 자율화는 사실상 0교시 부활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소희 전교조 경기지부 정책실장은 “9시 등교 자율화는 사실상 0교시 부활로 아이들의 입시 불안을 가중하게 할 것”이라며 “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선택으로 9시 등교제는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부 사립학교를 시작으로 주변 지역 학교까지 0교시 부활이 이뤄지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실장은 “모든 정책은 맞물리는 경향이 있는데 한 학교에서 8시로 등교를 앞당기면 옆 학교도 불안감에 등교시간을 당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고등학교 교장을 중심으로 오전 8시까지 등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게 이 실장의 주장이다.
경기도교육청은 9시 등교 자율화는 학교에 자율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라며 0교시 부활 우려를 일축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서 등교 시간을 변경해서 운영하고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할 계획이 없다”며 “9시 등교 자율화는 각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