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빼고 모두 역대급 폭락…'갓달러' 재앙에 세계가 떤다

김정남 기자I 2022.09.27 15:10:13

'갓달러' 충격파에 세계 금융시장 혼돈
英 파운드 역대 최저…국채 투매 장세
BOE "금리 조정 주저 않겠다" 구두개입
미 S&P, 연저점…3대지수 공식 약세장
'에브리싱 셀오프' 금융위기 공포 점증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초강경 긴축 기조가 초래한 역대급 ‘갓달러’에 전 세계가 떨고 있다.

달러화 가치가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한 와중에 달러화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통화, 주식, 채권, 부동산 등이 일제히 고꾸라지는 ‘에브리싱 셀오프(투매)’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모두 공식 약세장(베어마켓·전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에 진입했다. 주요 원자재와 가상자산 역시 연일 급락하고 있다.

갓달러 현상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하며 돈줄을 조이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대 결제 통화인 달러화가 나홀로 강세를 보이며 산업 경기가 쪼그라들 경우 초안전자산인 달러화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기 공포감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갓달러 충격’ 세계 금융시장 혼돈

26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 등에 따르면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장중 114.686까지 폭등했다. 2002년 5월 이후 20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달러인덱스는 올해 초 95 안팎에서 움직였다. 이날까지 19% 가까이 폭등했는데, 이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속도다. 이런 초강세 흐름으로 120에 근접할 경우 2002년을 넘어 역대 최고치로 폭등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적지 않다.

역대급 갓달러에 주요국 통화들은 고꾸라지고 있다. 당장 큰 충격을 받은 나라는 영국이다. 파운드·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1파운드당 1.0382달러까지 하락했다(파운드화 약세·달러화 강세). 당초 역대 최저였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시절인 1985년 당시보다 더 낮아졌다. 새로 출범한 영국 정부가 야심차게 감세 정책을 내세웠지만, 시장은 파운드화 투매로 반응했다.

런던채권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영국 국채(길트채) 2년물 금리는 장중 4.573%까지 치솟았다(길트채 가격 폭락). 길트채 2년물 금리는 지난 22일께만 해도 3% 초중반대에서 움직였다. 최근 2거래일새 하루 50bp(1bp=0.01%포인트) 이상 금리가 폭등하는 국채 투매 장세가 펼쳐진 것이다.

영국 영란은행(BOE)은 장중 “기준금리 조정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환율 방어를 위한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파운드화 약세는 멈추지 않았다. 밴티지 포인트 자산운용의 니콜라스 페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BOE가 이번주 긴급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금리를 올려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화의 충격파가 가장 컸을 뿐이지, 유로화,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등은 모두 올해 들어 10~20%대 폭락했다.

파운드화 쇼크에 세계 금융시장 전반에 공포감이 만연했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11% 하락한 2만9260.81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나스닥 지수에 이어 공식 약세장에 들어섰다. 대형주를 모아놓은 S&P 지수는 1.03% 빠진 3655.04를 기록했다. 6월 16일(3666.77) 당시 연저점을 깨고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다. 오랜 저금리 환경에서 주식 외에 투자 대안이 없다는 뜻인 ‘TINA’(There is no alternative·대안이 없다)’는 옛말이 됐다.

국제유가도 급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2.58% 하락한 배럴당 76.71달러에 마감했다. 1월 3일 이후 가장 낮다. 프라이스 퓨처스그룹의 필 플린 선임시장분석가는 “달러화가 폭등하고 위험 자산이 위축되면서 유가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며 “추가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에브리싱 셀오프’ 금융위기 공포

문제는 갓달러 현상이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오후 현재 시장은 연준이 오는 11월 75bp 금리를 올릴 확률을 67.3%로 보고 있다. 4회 연속 자이언트스텝을 밟아 11월부터 3.75~4.00%로 4%를 찍을 것이라는 뜻이다. 12월의 경우 4.25~4.50% 가능성이 66.4%로 가장 높다. 달러화 가치가 더 치솟고 국채금리가 추가 폭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월가에서는 연준이 수입물가를 낮추기 위해 갓달러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부쩍 커졌다. 마이클 윌슨 모건스탠리 수석주식전략가는 “달러화 강세는 역사적으로 금융위기 혹은 경제위기로 이어졌다”며 “만약 무엇인가 무너지지 않을까 경계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라고 했다. 악시오스는 “세계 경제는 (금융위기가 덮친) 2007년 8월의 불길한 느낌을 갖고 있다”고 썼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금융정보업체 네드데이비스 리서치는 최근 경기 예측 모델을 바탕으로 한 세계 경기 침체 확률이 98%를 돌파했다고 추정했다. 네드데이비스는 “내년 어느 시기에 세계적으로 심각한 경기 침체 위험이 있다”며 “세계 증시가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영란은행(BOE) 총재. (사진=AFP 제공)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