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충청권 4개 시·도의 초대형 프로젝트인 2030 하계 아시안게임 유치가 시작도 전에 거센 반대에 직면했다. 정치권은 물론 지역 시민사회단체까지 가세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 여론이 당초 예상을 깨고, 냉정하다 못해 차가운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1993년 대전 엑스포나 2002 한·일 월드컵 등 그간 충청권에서 진행됐던 크고 작은 국제행사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대조적이다.
과거 지역주민들은 국제·대형 행사에 열광적 지지를 보였고 대회를 유치한 단체장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대형·국제행사를 유치하면 행사장·경기장 건설부터 도로 등 막대한 규모의 사회간접자본이 지역에 투자됐고 이는 다시 지역경제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로 인식했다. 건설업체들로 대변되는 지역 경제계에서도 국제·대형 행사가 가져다주는 엄청난 효과를 지속적으로 홍보해 왔다. 이는 현직 단체장과 소속 정당에게 꽤 유리한 여론이 형성됐고 `국제·대형 행사 유치=지지율 상승`이라는 공식이 오랫동안 정치권의 정답으로 인식됐다.
대전시와 세종시, 충북도, 충남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단체장들 역시 이 달콤한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역 발전을 촉진하고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 건설 이후에 뚜렷한 공동의 어젠다가 없던 충청권 4개 시·도는 최근 2030 하계 아시안게임 공동 유치를 선언했다. 특히 36개 종목을 치른다고 가정할 때 현재 대전과 충북, 충남에 있는 경기장을 활용할 수 있고 17개 종목 경기장만 국제 규격에 맞게 신축하면 된다. 이 경우 필요 예산은 1조 2500억원(추정치)으로 4개 시·도가 이를 분담하면 10년 동안 매년 300억~400억원으로 2002 부산아시안게임(3조 2400억원)과 2014 인천아시안게임(2조 500억원)과 비교해도 2분의 1 또는 3분의 1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현지에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에 이어 정의당까지 2030 아시안게임 공동유치를 반대하고 있다. 야당 인사들은 “예산 1조 2000억원을 4개 시·도가 나눠 3000억원으로 개최한다는 단순 계산은 이번 계획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충분한 시·도민 의견수렴과 철저한 비용 대비 효과 분석 없이 발표해 졸속 행정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민사회단체인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도 성명을 통해 “국제대회의 장밋빛 예측은 이미 끝났다”며 “명분도 대책도 없는 무분별한 국제대회 유치는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과거 학습효과 탓이기도 하다. 대전의 경우 93 엑스포 이후 엑스포과학공원에 대한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채 20여년이 지난 최근에야 엑스포 재창조 사업이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특혜성 사업이 남발됐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위해 1400억원을 들여 세운 대전 월드컵경기장도 아직까지 활용방안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빛 보다는 그림자가 크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알게된 영향도 크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달콤한 유혹보다는 ‘하얀 코끼리’의 저주를 더 두려워하고 있다.
일회성 행사에 수천억원을 집행하고 그 뒤에 남은 빚은 모두 국민들 몫으로 돌아오는 하얀 코끼리의 덫에 더 이상 빠지고 싶지 않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이다. 단체장들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유치를 재임 시절 최대 치적으로 홍보하기 전에 국민들 삶 속으로 들어가 민생을 먼저 살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