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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희 가족은 아빠, 엄마, 아들 상희 세 명으로 이뤄져 있다. 겨울방학이 끝날 때쯤 회사 발령으로 엄마는 제주도에서 일 년 정도 일하게 됐다. 대신 아빠는 육아휴직을 내고 상희를 돌보기로 했다. 아빠는 일 년 동안 상희와 마음껏 놀 생각도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상희를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저 돈만 내고 걱정하면서, 스트레스받는 것을 노력했다고 자위하면서 이런저런 학원에만 보내면 될까?
아빠는 평소에도 “생각하는 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열 살이 된 아들에게 직접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주기장(週企帳)이었다. 일주일에 하나씩 ‘기획(企劃)’을 해보고 기록하는 공책이란 뜻이었다. ‘기획’이란 현실 위에 미래를 꿈꾸며 그리는 그림이었다. 생각이 먼저 있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아빠는 상희가 주기장을 처음 접해보기 때문에 의욕을 돋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기장을 작성해야 매주 용돈을 주기로 했고, 나중에 비싼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상희 이름으로 된 통장에 별도의 적립금도 입금해주기로 했다. 적립금은 일종의 보너스로 보너스 지급 여부와 금액은 아빠가 결정하기로 했다. 아빠와 상희는 본 내용으로 계약서를 작성했고 서로 지장을 찍었다. 그리고 서두에 “주기장은 상희가 아빠에게 돈을 내고 배워야 정상이지만, 아직 상희의 나이가 어려 경제활동이 어렵고 혈연관계임을 고려해 특별히 무상으로 교육함을 밝힌다.”라고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기획’이란 말은 아이에게 어렵기 때문에, ‘수수께끼’란 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본문]
엄마를 김포공항에 내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는 소파에 그대로 쓰러졌다. 자신도 모르게 30분 정도 곯아졌다 깨어난 아빠는 잠시 더 누워 있다가, 듣고 싶은 음악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인공지능 스피커를 향해 “레너드 스키너의 프리 버드 틀어줘.”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스피커는 알아듣지 못했다. 괜히 부아가 치민 아빠는 ‘이렇게 사소한 일에 감정을 소비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스피커를 꾸짖고 있었어요.
그때 엄마와의 약속대로 방에서 책을 보고 있던 상희가 나왔다.
“아빠, ‘구리구리’(인공지능 스피커의 애칭)가 못 알아듣나 보지. 아빠 내가 말해볼게. 뭐라고 말하면 돼?”
아빠는 상희에게 듣고 싶은 음악 제목을 알려줬어요. 상희가 알아듣는데 애먹긴 했지만, 상희가 말하자 ‘구리구리’는 단박에 알아들었어요. 아빠는 속으로 짜증 났지만 상희에게 “우리 상희는 참 대단하구나”라고 말했어요.
“내 목소리에 더 익숙해져 그런가 봐요. 전 자주 말하니까.”
아빠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상희야, 이제 다섯 번째 수수께끼 나간다.”
■수수께끼 5 : 전자제품을 터치하거나 손동작 또는 음성으로 조작하는 것 말고, 더 편한 방법은 없을까?
사실 아빠도 정답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아빠도 정말 알고 싶었고, 어떤 대단한 회사가 꼭 만들어줬으면 했다. 며칠 뒤 상희는 주기장을 가져왔다. 친구들과도 토론했는데, 친구들도 정말 재미있다고 했다.
수수께끼 5 : 전자제품을 터치하거나 음성으로 조작하는 것 말고, 더 편한 방법은 없을까?
●해결 방법 1 : 호흡으로 전자제품을 조작한다. 짧은 날숨 한 번은 끄고 켜는 것, 짧은 날숨 두 번은 앞으로 가기, 짧은 날숨 세 번은 뒤로 가기. 긴 날숨은 검색하기
●해결 방법 2 : 눈 깜빡임으로 전자제품을 조작한다. 조작하고 싶은 전자제품을 3초 이상 쳐다보고, 한 번 깜빡이면 끄고 켜고, 두 번 깜빡임은 앞으로 가기, 세 번 깜빡임은 뒤로 가기, 다섯 번 깜박이면 검색하기
●문제점 1 : 들숨으로 전자제품을 조작하는 것은 어느 전자제품을 조작하는 건지 특정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호흡과 전자제품을 조작하는 호흡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문제점 2 : 눈 깜빡임으로 전자제품을 조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눈 깜박임과 구분하기 어렵다.
●문제점을 생각한 이유 : 정확하게 조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조작법은 애초에 필요가 없으니까.
●문제점 해결책 : 어느 전자제품을 조작할지는 맨 처음 전자제품 화면으로 정하거나 음성명령으로 정한다. 그다음 들숨이나 눈 깜빡임으로 조작하면 된다.
아빠도 상희의 주기장을 보고 감탄했다. 그건 아빠가 별도로 찾아온 애플의 특허 “응시 정보를 사용한 디바이스 제어”와 거의 비슷했다.
애플에서도 기존의 방법으로 전자 디바이스를 조작하는 것은 번거롭고 비효율적이라고 봤다. 사용자가 디바이스 버튼을 누르려면 꼭 팔이 닿는 거리에 디바이스가 있어야 하고, 음성명령도 사용자가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그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고, 사용자가 여러 명일 경우 특정 사용자에 대한 적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래서 애플은 전자제품을 제어하는 데 있어 응시 정보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거실에 수많은 전자제품을 제어할 때 특정 디바이스를 일정한 각도와 시간 동안 응시하면, 그 디바이스는 추가 명령을 들을 수 있도록 활성화된다.
예를 들어 램프를 켜고 싶으면 램프를 쳐다본 다음에 “테이블 램프를 켜줘 (Turn on the table lamp)“라고 말하는 것이다. 애플의 특허는 거기까지이지만, 여기에 상희의 아이디어를 더한다면 더 편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이를테면 아빠가 소파에서 더 게을러질 수 있게. 아빠는 상희의 주기장 오른쪽 위와 같은 내용을 간단히 쓰고,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었어요.
편석준 작가는
아이와 성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 연습을 돕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특허동화 『상상이상 미래세상』, 일반동화 『이제 내가 대장이야』 『토끼 손잡이와 여섯 손가락』을 출간했으며, 어른들을 위한 책으로 에세이 『너는 내일부터 치킨집 사장이다』, 인문교양서 『구글이 달로 가는 길』, 소설 『10년 후의 일상』, 경제경영서 『사물인터넷』, 『사물인터넷, 실천과 상상력』, 『가상현실』, 『스타트업 코리아』, 『왜 지금 드론인가』, 『전기차 시대가 온다』 『4차산업혁명 IT트렌드 따라잡기』, 『미래의 직업전망』 등을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