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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영아 유기치사 혐의 '비정한 친부모'…무죄 이유는

조민정 기자I 2021.09.02 15:55:07

2일 서울남부지법,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
부부, 2010년 여아 낳고 방치 사망케 한 혐의
母 "6년간 시신 집에 보관" 자수…시신 못 찾아
검찰, 유기치사 혐의로 징역 20년 구형했지만
재판부 "친모 진술로만 공소사실 입증 어려워"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사실혼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를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채 방치하다 사망하자 나무상자에 담아 집에 보관한 친부와 친모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망 시점으로 추정되는 2010년 이후 10년이 흘렀음에도 아이의 시신이 여전히 발견되지 않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친부의 잠적으로 세 차례 선고가 연기됐던 1심 재판이 1년 반 만에 마무리됐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재판부 “친모 진술이 유일한 증거…신빙성 부족해”

2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이상주)는 영아 유기치사 혐의로 기소된 친부 김모(44)씨와 친모 조모(42)씨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의 공소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선 신빙성 있는 증거가 필요한데 친모의 진술을 제외하면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범죄사실 자체가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부여된 혐의 또한 증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친모의 진술 또한 설득력이 없고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공소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간접증거에 불과하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법원은 사망한 아이를 보관한 상자에서 악취가 나지 않았다는 진술과, 나무 상자에 시신을 6년간 보관한 사실 등이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망한 아이를 상자에 유기해 실온에 방치했다면 악취가 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증인들은 “향 정도가 났지만 역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6년간 이사를 하면서 못이 아닌 실리콘으로 만든 나무상자를 부패한 시신과 함께 이동시켰다는 사실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6년간 시신 보관…친부, 잠적했다가 구속

사실혼 관계였던 김씨와 조씨는 2010년 10월 여자아이를 낳았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고 필수 예방접종도 실시하지 않는 등 사실상 방치했다. 2~3일간 고열 등에 시달리던 아이는 태어난 지 두 달 만인 그 해 12월 숨졌다. 검찰은 “고열에 시달리는 상태였음에도 학대 사실이 발각될 걸 우려해 피고인들이 아이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아이가 사망한 사실은 어떤 기관도 알지 못했다. 친모와 친부는 아이의 시신을 포장지 등으로 싸맨 뒤 흙과 함께 나무 상자에 담고 실리콘으로 밀봉해 보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건은 2016년 4월 김씨와 별거한 조씨가 2017년 경찰에 자수하면서 7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조씨에 따르면 이들은 6년 동안 아이 시신을 집에 보관하다 김씨가 아이의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끝내 아이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당초 1심 재판은 지난해 11월 내려질 예정이었지만 선고 직전 김씨가 잠적하면서 공판이 연기됐다. 구인영장이 발부된 이후 김씨는 지난 5월 자신이 지명수배자라며 경찰에 자수해 붙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사실상 살인 행위에 해당한다며 결심 공판에서 김씨에게 징역 20년을, 조씨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은 “양형기준상 유기치사는 통상 징역 3~5년을 구형하나 본건은 사실상 살인 행위와 다를 바 없어 살인죄 양형기준을 따르면 징역 15년 이상에 해당한다”며 “기존 구형 이후 아동학대 범죄 인식에 변화가 있었고 유사사건인 ‘정인이 사건’에서도 사형이 구형된 점, 본건이 국민 공분을 일으킬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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