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9일 야당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로 정국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한나라당, 전격 가세
“여러분께 눈물로 단결을 호소한다. 우리는 지금 단결해야 할 때다.”(최병렬 대표)
“우리 당 의원들이 불같이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홍사덕 원내총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의안 발의를 결정한 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장에 선 거대 야당의 두 지휘자는 마치 최전선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중대장 같았다.
이날 의총에서는 여론의 역풍을 우려하는 소장파 의원들 목소리도, 총선 패배를 걱정하는 수도권 의원들 걱정도 모두 ‘참전파’들의 강성 목소리에 묻혔다. 남경필·권영세·정병국·전재희 의원 등 수도권과 소장파 의원들은 이날 오전 홍사덕 원내총무와 2시간 넘는 마라톤 회의를 가지며, “발의하는 것만으로도 당은 치명상을 입는다”고 ‘중단’을 요청했다.
논란은 의총장에서도 이어졌다. 전재희·전용학·장광근 의원이 잇따라 발언을 신청, “탄핵안이 아니라 ‘사과결의안’ 정도 수준에서 정리하자. 국민은 불안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지에 나섰다.
그러나 영남 중진 이강두 의원이 “야당으로서 마땅히 가야 할 야당의 길을 가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의원이 “탄핵 발의하면 수도권 의원들 다 죽는다”며 호소했지만, 돌아온 것은 “너 ×× 당에서 나가”라는 임인배 의원의 욕설뿐이었다.
이어 맹형규·이해구 의원 등 수도권 중진 의원들도 “반대할 때는 반대했지만 결론이 난 이상 따라야 한다”고 ‘탄핵 발의’에 가세하자, 대세는 ‘탄핵’으로 기울었다. 이어 최병렬 대표가 나서 “당이 단합하는 모습을 보일 때 우리 지지자들은 돌아온다.
홍사덕 총무는 “여러분이 동의해 주신다면 굳이 표결에 부치지 않고 곧바로 발의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권오을 의원은 의총장에서 걸어나오면서 “죽는 길로만 간다. 죽는 길로만…”이라고 중얼거렸다.
◆민주당 “4년 더 맡길 수 없다”
탄핵 발의를 주도해온 민주당은 이날 온종일 상임중앙위를 수차례 열면서 ‘결전 의지’를 다졌다. 한나라당 의총에서 탄핵 결론이 났다고 알려지자, 민주당은 준비한 탄핵안을 신속하게 국회에 접수시켰다.
발의안 제출 후 조순형 대표, 유용태 원내대표, 추미애 상임중앙위원 등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다시 긴급 상임중앙위를 소집해 대책을 숙의했다. 유용태 원내대표는 “우리는 국민과 더불어 발의된 탄핵안이 가결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민주당은 탄핵안 발의 후 ‘국민에게 드리는 결의문’을 내고 “민주당은 결코 선거를 앞두고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노무현 대통령은 더이상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탄핵하는 것이 도리어 국정을 안정시키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강력 반발
청와대측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면서 분통을 터뜨리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정무수석실은 발의 소식이 전해진 오후 4시쯤,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관광채용박람회에 참석 중인 노 대통령에게 긴급 보고하는 한편, 각 정당의 상황을 시시각각 점검했다. 정동영 의장, 김근태 원내대표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와도 전화통화 등을 통해 논의했다. 김우식 비서실장도 오후 5시에 긴급 수석·보좌관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공식 입장 발표는 늦어졌다. 윤태영 대변인은 “의견을 모아서 발표하겠다”고만 했다. 그러나 일부 젊은 행정관급 비서실 직원들은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 것이냐”는 등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한 정무수석실 행정관은 “방송에 나가 대통령이 한마디 한 게 과연 탄핵사유가 된다는 말이냐”면서 “총선을 앞두고 있다지만 이건 몰상식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도 탄핵안 발의 직후 긴급 의총을 소집했다. 김근태 원내대표, 이해찬 의원 등은 “내란음모이자 쿠데타적인 행위에 다름 아니다”라며 “이 폭거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단호하게 막겠다”고 말했다. 이부영·정장선 의원 등은 “대통령이 사과는 아니지만 유감 표명 정도는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격앙된 분위기에 묻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