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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살인적 물가에 몸살…두자릿수 '껑충'

권소현 기자I 2015.08.17 15:06:23

이코노미스트 자체 인플레 산정…올들어 4배 올라
정부지출과 통화량 늘린 후유증
디폴트 가능성도 높아져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이 물가가 오르지 않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는 반면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들은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에 몸살을 앓고 있다. 유가 하락 등으로 경제는 어려운데 그동안 정부지출과 통화량을 적극 늘린 후유증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이 마지막으로 물가상승률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12월이다. 당시 물가상승률이 무려 68%에 달하자 그 이후부터 발표를 중단해 9개월째 비공개를 유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경기가 얼어붙고 물가는 치솟으면서 오는 12월 의회 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뿐 아니라 국제수지,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지표 발표를 일절 중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코노미스트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물가상승률 측정에 나섰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금융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미구엘 옥타비오는 매달 한 번씩 고국인 베네수엘라를 찾아 아레파스라는 옥수수 전병을 파는 레스토랑에 들린다. 이 아레파스 가격을 기초로 물가상승률을 추정하는 ‘아레파 지수’를 지난 9개월간 작성해왔다. 이 아레파 지수로 보면 물가는 그동안 4배나 올랐다.

정부의 공식 지표 대용으로 인용되는 센다그룹의 물가조사 발표치를 보면 5월부터 7월까지 물가는 20% 올랐다. 월간 상승률로는 15년 만에 최대폭이다. 뿌리채소는 32% 올랐고, 고기류는 22% 상승했다. 콩 가격은 무려 130% 뛰었다. 끊인 검은콩과 얇게 저민 고기조림, 흰밥으로 구성된 베네수엘라 전통음식 파베욘 크리올료(Pabellon criollo)이 고급음식이 된 이유다. 물가 상승으로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한 달 식품을 사려면 최소 임금을 기준으로 3개월 치는 있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의 7월 물가상승률은 연율 기준으로 9.6%를 기록해 12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브라질 중앙은행은 며칠 뒤 금리를 올렸다. 최근 2년 새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16차례나 올린 것이다. 우루과이의 물가상승률도 목표 범위인 3~7%를 웃돌고 있다. 바클레이즈는 중남미 국가들이 올해 이머징 국가 평균치에 비해 세배 수준의 물가상승률을 보인 것으로 추정했다.

사실 1980년대 중반까지 중남미 국가 대부분은 대규모 부채부담과 정부보조금을 줄이기 위해 긴축에 나섰다. 그러나 이후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풍부한 석유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등에서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망령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 2008년 1000볼리바르를 1볼리바르로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이후 7년간 볼리바르 통화량을 18배 늘렸다. 경제 위기와 핵심 수출대상인 유가 하락으로 베네수엘라는 식료품에서부터 자동차 부품에 이르기까지 수입품에 대해 이미 수십억달러의 빚을 진 상태다.

아르헨티나에서 자란 클라우디오 로세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사는 “돈을 찍어내고 통화량을 과도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이 연내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높아지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신흥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자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은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바클레이즈는 올해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이 200%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웃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르헨티나 물가상승률 역시 30% 이상일 것이란 전망이 높다.

이에 따라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도 높아졌다. 바클레이즈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베네수엘라가 향후 5년 내 디폴트에 이를 가능성을 98%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2027년 만기되는 베네수엘라의 달러화 표시 채권 수익률은 26.2%에 달한다. 달러 대비 볼리바르화 가치는 공식적으로는 6.3볼리바르지만 암시장에서는 100볼리바르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12개월 동안 볼리바르화 가치는 무려 90% 하락한 것이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돈을 찍어내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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