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도 움직인 2030 `힙불교`…출판계 불며들다

김미경 기자I 2024.09.04 12:27:55

"현생에 집착말라"…서점가 `불서` 열풍
2030세대, 불안한 미래 불교철학서 위로
''초역 부처의 말'' 9주째 베스트세러 톱20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고전, 역주행 인기
법정스님 에세이, 석달째 에세이 상위권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월급이 안 올라서, 내 주식만 떨어져서, 월요일이 빨리 와서, 친구가 잘나가서, 미래가 안 보여서 ‘고통’. 이 또한 지나가리. 고통을 이겨내면 극락왕생! 옴~ 옴~ 옴~ 옴~”.

전자음악(EDM) 반주에 맞춰 불교 진언(주문)이 흘러나왔다. 흡사 나이트클럽을 방불케 하는 이 무대는 지난 4월 서울국제불교박람회 현장. ‘뉴진스님’으로 활동하는 코미디언 윤성호(48)가 승려 복장을 하고 나오자, 객석은 들썩였다. ‘불교, 나 빼고 또 재밌는 거 하네.’ 요즘 소셜미디어(SNS)에 자주 등장하는 밈(meme·화제가 된 인터넷 콘텐츠)이다. 한철 유행일 줄 알았던 20~30세대의 불교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반야심경·싯다르타…서점가 불교서적 열풍

‘힙’해진 불교에 대한 관심이 서점가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쉽고 친근하게 불교 철학을 설파하는 관련 책들이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대거 포진한 것이다. 통상 불교 관련 서적의 주 독자층이 50대 이상의 불교 신자 중심이었다면, 최근 구매자 대다수는 20∼30대 젊은층. 소설·인문·에세이·자기계발(명상) 등 분야도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젊은층이 쏘아올린 ‘힙한 불교 열풍’이 서점가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3일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지난 5월 출간한 일본 스님 코이케 류노스케의 신간 ‘초역 부처의 말’(포레스트북스)은 9주 연속 종합 베스트셀러 20위권에 올랐다. “원하고 원해서 견딜 수 없는 상대를 만들지 마세요”,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등 경전에 실린 부처의 가르침을 현대어로 간결하게 풀이한 책이다. 류노스케 스님은 국내에서 70만 부 팔린 전작 ‘생각 버리기 연습’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반야심경 관련서
불교의 핵심 사상을 함축해 불교 입문의 필독서로 꼽히는 ‘반야심경’ 역시 인기다. 올여름(6월1일~8월20일) 2030세대의 반야심경 관련서 구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31.9% 늘었다. 특히 반야심경을 대중의 눈높이로 풀어낸 ‘법륜 스님의 반야심경 강의’(정토출판)는 관련 도서 2030 세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 세대 구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6%나 증가했다.

부처의 삶을 조명한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민음사)도 역주행 중이다. 2002년 첫 출간 후 20여년 만에 젊은 층의 눈도장을 받은 셈이다.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을 그린 종교적 성장소설로 방황하는 청춘을 위한 지침서로 불린다. 문학동네와 문예출판사 출간본 또한 각각 올해 1.4배, 26배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에세이로도 읽혔다. 법정 스님(1932∼2010)의 미공개 강연록 ‘진짜 나를 찾아라’(샘터)는 4월 말 출간 뒤 석 달째 에세이 분야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법정 스님이 전국을 돌며 진행했던 대중 강연을 묶은 책이다.

주요 출판사 버전의 ‘싯다르타’
◇미래 세대 가치와 연결…포용·몰입에 MZ 반응

업계는 올해 수차례 열린 불교 행사의 입장객 대다수가 20∼30대였던 걸 고려하면, “MZ세대의 불서 판매 증가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치열한 경쟁 현실과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출판계 관계자는 “‘힙 불교’ 바람을 일으킨 세대가 관련 책 시장까지 이끌고 있다”면서도 “불교의 합함에는 근거가 있다. 경쟁 구도에 내몰린 젊은 세대가 현생에 집착 말고 순간순간 몰입하자는 불교의 메시지에 위로받고 반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인생 멘토나 힐링 담론에서 더 나아가 다양성을 중시하는 미래 세대의 가치와 연결된다는 해석도 있다. 이 관계자는 “다른 보수 종교들과 달리 대한불교조계종은 인종차별에 목소리를 내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해왔다”면서 “불교는 좀 더 열린 자세로 듣고 수용한다는 인식에서 젊은 세대가 더욱 이끌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8일 오후 벡스코에서 ‘2024부산국제불교박람회’의 공식 홍보대사이자 ‘힙한 불교’의 메신저 뉴진 스님 코미디언 윤성호의 불경 EDM 디제잉 파티가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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