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어도 끝까지".. 부정승차 단속 전체 1위 찍은 '이 사람'

함지현 기자I 2024.01.22 15:00:11

■인터뷰-지하철 부정 승차 단속 1위 박철희 남구로역 부역장
우대용 카드 부정 사용 빈번…직원 눈 피해 무작정 탑승도
11년간 부가금 6.4억원 징수…지난 5년간 7877건 적발
"비법은 '관심'…선량하게 요금 내는 시민 위한 사명감"

[이데일리 함지현 기자] 어느 노부부의 부정승차는 확실한 팀워크 아래 이뤄졌다. 만 65세가 넘어 지하철에 무임 승차할 수 있는 남편은 일회용 이용권 발급기에 자신의 신분증을 올려만 두고 개찰구로 향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로 우대 교통카드를 이용해 탑승했다. 그 사이 바로 뒤에 줄 서 있던 부인은 마치 정상 요금을 내는 것처럼 보증금 500원만 넣고 경로 우대용 일회권을 발급해 유유히 개찰구를 통과했다. 마치 두 사람이 두 개의 표를 끊은 것 같지만 부인은 아직 만 65세가 넘지 않았다. 남편의 신분증으로 우대용 일회권을 끊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지만, 반복적인 불법행위를 하는 동안 보증금은 꼬박꼬박 환급받아 다시 1회권을 받는 데 사용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의 ‘범죄’는 오래가지 못했다. 박철희 남구로역 부역장은 매번 함께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우대용 카드와 1회권을 같이 사용함에 이상함을 느꼈다. 남편의 교통카드 승차 시간을 따라 폐쇄회로(CC)TV를 하나하나 살펴본 결과 약 20번의 부정 승차를 적발했다. 부정 승차자에게는 운임에 30배의 부가금까지 더해 징수한다. 이 부인은 정상적으로 탑승했다면 3만8000원에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부정 승차로 총 117만8000원의 부가금을 내야 했다.

노부부의 꼼수를 찾아낸 박 부역장은 서울교통공사에서 부정 승차를 가장 많이 적발한 인물이다. 그는 22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사소한 관심에서 시작해 노하우가 쌓이다 보니 어느덧 가장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부역장이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징수한 부가금은 총 6억4351만원에 달한다. 시스템상 조회 가능한 2019년부터의 누적 적발 건수는 7877건으로 서울교통공사 전체 1위다.

박철희 남구로역 부역장(사진=서울교통공사)
◇우대카드 악용부터 ‘야바위급’ 손속임까지…유형도 다양

박 부역장은 부정 승차 유형이 점차 고도화해 지속적인 적발을 위해선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승차 게이트를 마치 파쿠르(건물이나 사물 등을 활용해 이동하는 곡예)처럼 역동적으로 뛰어넘는 승객을 발견하는 것은 그래도 쉬운 편에 속한다. 표를 찍지 않고 들어가는 무(無)표 미신고 유형의 대부분은 연기까지 동반하며 자연스럽게 직원 속이기를 시도한다.

실제 영상으로 기록된 부정 승차 사례를 보니 한 두번 봐서는 도저히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교묘했다. 교통카드를 찍는 척하면서 부정 승차 방지를 위해 양쪽에서 튀어나온 플랫을 그대로 밀고 들어서던 승객의 손놀림은 흡사 야바위꾼을 보는 듯했다. 빈 지갑을 댄 뒤 그대로 들어가거나, 한 명이 카드를 찍고 두 사람이 들어서는 유형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하철이 도착하는 순간에 아슬아슬하게 맞춰 뛰어들어간다는 점이다.

박 부역장은 “급히 들어가느라 카드가 찍히지 않은 것을 몰랐다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혹시 직원들이 감지하고 단속하러 내려가더라도 이미 지하철을 타고 떠나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도착시간에 딱 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대용 카드를 의도적으로 부정 사용하는 것도 악질 사례다. 그러나 여러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상당수 단속할 수 있다. 먼저 개찰구에 카드를 찍을 때 경로 카드는 빨간색, 청소년은 파란색, 어린이는 초록색으로 각기 다른색 불이 들어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85세 이상 경로 우대용 카드 사용시 ‘아이(i)센터(역무실) 시스템’에 출입 게이트와 성별 등 기본적인 정보가 뜬다는 점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여성 노인으로 등록한 카드를 남성, 혹은 젊은 승객이 사용하면 바로 식별 가능하다. 65세 이상의 신분증으로 1회용권을 끊는 경우도 반복하면 CCTV를 통해 잡을 수 있다. 의심행위를 했지만 이 역을 일회성으로 지나간 사람이라면 카드 정보를 미리 등록해 관리하기도 한다. 이 밖의 여러 의심 상황은 카드 정보와 CCTV, 다양한 노하우로 적발해 낼 수 있다.

박 부역장은 “중증도 장애인은 거동 보조를 위해 동반 1인까지 무임 승차할 수 있는데 이것을 악용하기도 하고, 부모가 아이의 카드를 사용하는 ‘1976년생 어린이’도 있다”며 “심지어 젊은 사람이 고령자 우대카드를 사용해 단속했더니 젊은 디자인이 된 카드를 내밀어 ‘내가 착각했나’ 하고 당황한 적도 있었다. 알고 보니 경로 우대용 카드 겉면에 다른 디자인을 넣어 코팅한 카드였다”고 털어놨다.

◇“부정승차는 범죄…잠시 모면할 뿐 언젠간 잡힌다”

수 천 번의 경험이 쌓였지만 그래도 단속은 고됨의 연속이다. 우대 카드를 사용하기엔 젊어 보여 신분증 확인을 부탁하면 대부분 불만을 표출한다. 만약 정당한 승차라면 그 강도가 더 세진다. 승객들이 부정 승차를 발견해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예전에 부정 승차 경력이 있는 승객이 오히려 더 강하게 문제 삼을 때를 보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박 부역장은 “직원들도 고충을 토로하는데 나 역시 단속하면서 욕을 많이 먹었다”며 “어느 승객은 ‘배 째라’ 식으로 나와 경찰과 119가 출동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아내 1년이 넘도록 공중전화로 욕하는 스토킹 수준의 괴롭힘을 당했다. 이 때문에 핸드폰을 하나 더 쓰게 됐다”고 토로했다.

박 부역장은 “여러 어려움을 겪음에도 단속을 계속하는 이유는 선량하게 요금을 내는 분들에게 정당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라며 “혹시 본인은 문제가 없음에도 카드 확인 요청 등 잠시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조금만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정 승차자에게는 “부정 승차도 범죄”라며 “본인은 평생 안 들킬 것으로 생각하는데 요즘은 워낙 CCTV도 잘 돼있고 시스템도 고도화해 피해 갈 수 없다. 그때만 잠시 모면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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