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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판사는 “당시 공정위가 조사대상을 검찰에 고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피고인들의 행위와 공정위 고발 사이 1년이 넘는 시차가 존재한다”며 “당시 현대중공업의 주된 관심사는 검찰 수사가 아닌 공정위 조사에 대비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형법상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려면 이들에게 HD현대중공업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할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이들의 행위는 형사사건이 아닌 공정위 조사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취지다.
박 판사는 “어찌 보면 검찰 수사보다 훨씬 중요한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행위는 크게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도 “하도급법상 조사방해 행위를 과태료 대상으로만 정한 법 체계에 따른 부득이한 결론”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에게 증거인멸의 고의가 명백히 입증됐다고 보기 어려워 증거인멸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도급법과 파견법 위반의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과 달리 자료 은닉·폐기 등 조사방해 행위에 대해 과태료만 부과할 뿐 형사 처벌 규정은 없다.
앞서 A씨 등은 2018년 7~8월경 공정위의 하도급법 위반 직권조사 및 고용노동부의 파견법 위반 수사에 대비해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2021년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A씨가 회사 임직원들이 사용하는 PC 102대, 하드디스크 273대를 교체해 법 위반 자료를 삭제할 것을 지시하고 B씨, C씨는 다른 직원들에게 순차 지시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증거인멸 행위를 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는 2014~2018년 현대중공업이 하청업체 200여 곳에 선박·해양플랜트 제조작업 4만8000여 건을 위탁하며 계약서를 작업 시작 후 발급하고, 단가 인하를 강요하거나 하도급 대금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 등 ‘갑질’을 한 사실을 적발해 과징금 208억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이들의 조사방해 행위를 두고 현대중공업 법인에 1억원, 직원에게 2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지만 별도 형사 조치는 하지 않았다.
이에 2020년 6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이들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