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부마항쟁 당시 계엄령이 발령된 부산지역에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계엄령 위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씨(64)에 대한 재심 상고심 사건에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씨는 1979년 10월 20일 “발표 명령이 내렸다, 총소리가 군중 속에서 났다 ”등의 유언비어를 유포해 계엄법위반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엠네스티 부산경남지부 간사로 활동하던 김씨는 부산지역 소요사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부산에 온 손학규 당시 한국기독교연합회 간사(현 바른미래당 대표) 등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1979년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부산지구 계엄사령관 육군중장 박찬긍은 유언비어의 날조 및 유포를 금하는 등의 포고령을 내렸다.
김씨는 1980년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에서 징역 2년의 유죄판결을 받고 1981년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돼 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김씨는 2015년 8월 ‘부마 민주항쟁보상법’에 따라 부마 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받자 재심을 청구했고 부산고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당시의 계엄 포고령 자체가 구 계엄법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포된 것이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계엄법은 계엄사령관이 비상계엄지역 내에서 언론 출판 등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당시는 정치, 사회 상황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해야 할 정도로 군사상 필요성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부산고법은 또 해당 포고령은 범죄의 구성요건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적용범위가 포괄적이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해 위헌,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에 검찰은 부산고법 판단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날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계엄포고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인 부마민주항쟁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고 그 당시의 국내외 정치상황과 사회상황이 구 계엄법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할 때에 해당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또한 “계엄포고의 내용은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율,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는 일체의 행위 등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