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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테크 IPO 238일째 ‘가뭄’…닷컴버블·금융위기보다 심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간) 모건스탠리 자료를 인용해 “오는 21일이면 미 뉴욕 주식시장에서 자산 5000만달러(약 695억원) 이상의 테크기업 중 단 한 곳도 IPO를 하지 않은 238일째를 맞이하게 된다”며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당시의 최장 기록을 넘어서는 가뭄”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IT기업들의 IPO가 봇물 터지듯 했던 지난해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금융정보 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IP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은 70억달러(약 9조 7400억원)로 전년 동기대비 94% 급감했다.
올해 3월부터 거대한 보폭으로 진행되고 있는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주요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이란 전망에 경기침체 우려가 커졌고, 주식시장에선 기술주 매도세가 이어지는 등 불확실성 및 변동성이 확대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올해 28% 급락,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19%)보다 더 많이 떨어졌다. 금융정보 분석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S&P500에 속한 IT그룹은 올해 2분기엔 실적 추정치를 대부분 충족했지만, 3분기 실적 전망은 상당수가 하향조정돼 전년대비 4%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최근 2년 내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를 추종하는 르네상스 IPO지수는 올해 46% 폭락했다. 이에 투자자들은 IPO 기업들에 대해 높은 성장성은 물론 수익성까지 요구하는 등 허들을 높였다. 결국 올해 상장을 계획했던 기업들은 줄줄이 IPO를 철회 또는 연기했고, 내년 IPO를 준비하고 있던 회사들도 주관사 은행 선정을 미루고 있다.
IT기업은 아니지만 AIG에서 분사한 보험회사 코어브릿지는 지난 16일 17억달러 규모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안정성, 성장성, 수익성 모두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주가는 거래 첫 날 0.05% 약보합에 그쳤다. 시장 경계가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라고 FT는 설명했다.
SVB증권의 기술 주식 자본시장 책임자인 매트 월쉬는 “현재 시장에는 엄청난 불확실성이 있다. 이는 IPO 시장의 적이다. IPO 시장이 되살아나려면 시장 전망이 안정화하고 투자자들이 다시 증시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성장성이 검증돼 사모펀드 등으로부터 충분한 투자를 받았던 일부 기업들은 올해 IPO를 시도할 것으로 봤지만, 자금 사정에 여유가 있는 만큼 대부분이 내년으로 계획을 미뤘다”고 덧붙였다.
◇IPO 중심 美→亞 평가도…전세계 68% 中 집중·美14% 그쳐
이에 올해는 글로벌 IPO 시장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 등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평가했다. 블룸버그가 공모금액을 기준으로 자체 집계한 결과, 아시아 주식시장에선 올해 IPO를 통해 1043억달러(약 145조원)가 조달돼 전 세계 거래량의 68%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은 233억달러(약 32조 4100억원)로 14%에 그쳐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절반 이상인 51%가 미국에서 이뤄졌다. 작년 6570억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전 세계 IPO 시장 규모도 올해는 1528억달러로 23%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아시아 시장의 IPO는 대부분이 중국 기업들로 올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10개 IPO 중 6개가 중국 기업의 A주시장(중국 본토 증시) 또는 홍콩증시 상장이었다. UBS그룹의 질리 궈 아시아 주식시장 공동대표는 “A주 시장은 글로벌 변동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대부분 중국 내 자금에 의해 주도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장 상황이 안정적이서 지속적인 거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 정부 규제 등으로 뉴욕증시에서 데뷔하려던 중국 기업들이 홍콩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증시에 상장한 모든 외국 기업들은 2021년부터 시행된 외국회사책임법에 따라 상장기업회계감독위원회(PCAOB)의 회계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3년 연속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상장폐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