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005490)는 29일 경북 포항제철소에서 1고로 종풍(終風)식을 열었다. 종풍은 고로에 산소를 불어넣어 온도를 높이는 작업을 종료하는 것을 뜻한다. 업계에선 수명이 다한 고로의 불을 끌 때 ‘가동 중단’ 대신 종풍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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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는 지난해 기준 연간 조강 생산량 4058만톤(t)에 이르는 세계 6위 철강사다. 그러나 첫 쇳물을 생산하기까지 겪은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1958년부터 1967년까지 제철소 건설 시도가 다섯 차례나 흐지부지됐고, 1968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설립된 이후에도 고로를 지을 돈이 없어 제철소 건립 계획은 무산될 지경이었다.
결국 제철소와 고로 건설은 대일(對日)청구권 자금 가운데 1200억원을 끌어다 쓰면서 성사됐다. 박태준 명예회장(당시 사장)은 ‘선조의 피 값’을 사용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우향우 정신’(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지자는 의미)을 내걸고 포항제철소와 1고로 건설에 나섰다.
착공 이후 3년 2개월이 지난 1973년 6월7일 오전 10시30분, 박태준 사장은 태양열로 채화한 불로 고로에 불을 붙였다. 그로부터 21시간 만인 6월 9일 오전 7시30분, 첫 쇳물이 쏟아졌다. 국내 역사상 최초로 대형 고로에서 철을 생산한 순간이었다. 쇳물이 나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박태준 명예회장을 비롯한 임직원은 감격의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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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1고로는 이후 대한민국 철강 역사의 산실이자 국내 중공업 산업의 젖줄 역할을 해왔다. 대한민국은 1고로의 성공적인 준공으로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을 자력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이 쇳물로 조선·자동차·가전 등 국내 제조업이 단기간 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면서 한국경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1고로는 1979년과 1993년 두 차례 개수를 거쳤다. 보통 고로는 일반적으로 가동 후 15~20년 사용할 수 있지만 포스코는 다년간 축적된 제선 기술을 바탕으로 1고로의 생명을 안정적으로 연장했다. 1고로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서 ‘최장 기간 조업’을 한 고로라는 기록을 남겼다.
두 차례 개수를 거친 1고로는 48년 6개월 동안 5520만t에 이르는 쇳물을 생산했다. 이는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1380척을 건조하거나 중형 자동차 552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인천대교도 1623개나 건설할 수 있다. 한국철강협회는 포항 1고로의 상징적 의미를 기념해 첫 출선(出銑·쇳물이 나옴)일인 6월9일을 ‘철의 날’로 제정해 기념한다.
◇박물관으로 개조…철강 생산 능력엔 변화없을 듯
포스코는 1고로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고려해 1고로를 박물관으로 개조한다. 고로 내부를 완전히 냉각한 뒤 철거 작업을 거쳐 일반에 ‘포항1고로 뮤지엄’이란 이름으로 선보인다. 종풍 이후 열기가 다 식는 데까지 최소 6개월가량이 걸리는 만큼 해당 사업은 내년 하반기에서야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또 1고로가 종풍하더라도 포스코의 철강 생산 능력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1660㎥ 규모의 소형 고로였던 1고로는 최근 준공되는 5500㎥ 이상의 초대형 고로와 비교해 생산량이 많지 않았다. 포스코는 남은 8개 고로의 연원료 배합비 개선 등을 통해 철강 수급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학동 포스코 사장은 “1973년 6월9일 첫 출선 당시 박태준 명예회장이 직원들과 함께 1고로 앞에서 만세를 외치며 눈물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며 “변변한 공장 하나 없었던 변방의 작은 국가가 짧은 기간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포항 1고로와 여기 있는 여러분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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