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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 전 판권 계약으로 글로벌 시장 선점 가속화
한미약품은 지난 1월, 비만·대사질환 치료제인 '에페글레나타이드'에 대해 멕시코 최대 민간 제약사인 산페르(Sanfer)와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식약처 허가가 나오기 전 단계에서 이루어진 이번 계약은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의 폭발적인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미약품이 독자 개발한 국내 최초의 GLP-1 계열 치료제로, 거대 시장인 중남미 지역의 현지 1위 제약사가 허가 전 제품에 대해 초도 계약금을 지불하며 판권을 확보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상업적 측면에서 이는 출시와 동시에 별도의 유통망 구축 기간 없이 즉각적인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 '시장 진입 효율성'을 극대화한 사례로 꼽힌다.
특히 멕시코는 성인 비만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국가인 만큼, 현지 유통 강자와의 조기 결탁은 출시 초기 점유율 확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판로를 확보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신약의 시장 침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상업적 가치를 지닌다.
메디포스트 역시 지난해 12월 일본 테이코쿠 제약과 무릎 골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의 일본 내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재생의료 분야 규제가 엄격하고 데이터 기준이 매우 높은 시장이다. 메디포스트는 현지 임상 3상이 진행 중인 시점에서 약 118억원의 선수금과 148억원 규모의 마일스톤을 확보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이러한 계약은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임상 막바지 단계에서 비용 부담을 파트너사와 분담해 재무적 리스크를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일본의 까다로운 실사를 통과함으로써 줄기세포 치료제의 표준 기술력을 세계 시장에 입증했다는 가치를 지닌다. 일본 내 3상 데이터가 완성되기도 전에 거액의 선급금이 오갔다는 것은 파트너사가 해당 약물의 기전과 안전성에 대해 이미 충분한 확신을 가졌음을 의미한다는 지적이다.
입도선매가 초대박으로 이어진 가장 상징적인 사례로는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를 꼽을 수 있다. SK바이오팜은 2019년 미국 FDA 허가를 받기도 전인 그해 2월, 스위스 아벨 테라퓨틱스와 유럽 32개국에 대한 상업화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계약 규모는 총 5억 3000만 달러였으며, 이 중 반환 의무가 없는 선계약금만 1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당시 유럽 시장 내 중추신경계 기술 수출 중 최대 규모로, 글로벌 시장에 제품의 기술적 신뢰도를 공표하는 강력한 보증 수표가 됐다.
이후 아벨 테라퓨틱스가 이탈리아 안젤리니파마에 약 1조원에 인수되는 과정에서 SK바이오팜은 지분 매각 수익을 거뒀고, 엑스코프리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만 매출 6303억원을 기록하며 회사의 핵심 수익원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데이터 확신이 만든 재무적 안전장치와 상업적 가치
입도선매 계약이 단순한 자금 확보를 넘어, 글로벌 블록버스터로 도약하기 위한 탄탄한 재무적 기반과 시장 신뢰를 동시에 구축한 셈이다. 엑스코프리의 성공은 허가 전 계약이 기업의 장기적인 흑자 전환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결정적인 도약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특히 임상 단계에서 가치를 선점한 파트너사가 피인수되는 과정을 통해 원개발사의 지분 가치까지 동반 상승하는 선순환 구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경제적 파급 효과가 막대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허가 전 단계에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배경에는 데이터에 대한 강력한 상업적 확신과 현지 유통망 선점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반환 의무 없는 선급금은 단순한 계약금을 넘어선다.
파트너사는 계약 체결 전 수개월간 해당 약물의 원천 데이터와 임상 보고서를 철저히 실사하는데, 이 과정은 규제 기관의 심사만큼이나 정밀하게 진행된다. 따라서 허가 전 계약금 지급은 전문가 집단이 해당 약물의 기전과 데이터 유효성을 기술적으로 공인했음을 의미하며, 이는 신약 개발의 전형적인 리스크인 '데스 밸리'를 오직 기술력만으로 돌파했음을 뜻하는 가장 객관적인 경제적 지표가 된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선급금은 기업의 현금 흐름을 개선하고 후속 R&D를 위한 재투자 재원이 되어 기업 가치의 하방을 지지하는 강력한 재무적 지표로 작용한다. 개발 리스크를 글로벌 파트너사와 분담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상업적으로는 신약 출시 직후 발생하는 시장 침투 공백기를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파트너사의 현지 인프라를 미리 확보함으로써 허가 첫날부터 시장 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선점 효과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막연한 기대감 넘어 '검증된 자산' 중심 시장으로 전환
이러한 흐름은 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는 임상 초기 단계에서 얀센에 1조 4000억원 규모로 기술 수출돼 2024년 FDA 승인을 받은 후 빠르게 미국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HK이노엔의 '케이캡'은 미국 FDA 허가 신청을 완료한 후 지난 1월 기준 55개국과 기술수출 또는 완제수출 계약을 했고 이 중 19개국에 출시됐다. 대웅제약의 '엔블로'와 '펙수클루'도 중남미 등에서 허가 전 판권 계약을 성사시켜 조기 시장 진입의 토대를 마련했다.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자큐보' 역시 멕시코 산페르와의 계약을 통해 글로벌 파이프라인의 신뢰도를 입증했다. 최근에는 리가켐바이오나 에이비엘바이오와 같은 ADC 전문 기업들이 임상 초기 단계에서 조 단위의 기술 수출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입도선매의 대상이 플랫폼 기술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결국 우리 기업들이 보여준 입도선매 계약은 국내 바이오 산업이 막연한 기대감 위주의 시장에서 검증된 자산 중심의 시장으로 완전히 전환됐음을 상징한다. 허가가 나기 전에 이미 판권이 매각되고 계약금이 유입된다는 것은 제품이 완성되었을 때의 주도권을 갖기 위한 글로벌 시장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는 한국 제약 산업이 단순히 기술을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핵심적인 파트너로 인정받고 있음을 뜻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선급금 수령을 동반한 조기 판권 계약은 더 이상 단순한 기대감이 아닌, 글로벌 자본이 직접 검증한 데이터 경쟁력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반환 의무 없는 선급금은 강력한 하방 지지선 역할은 물론 향후 글로벌 매출 발생 시 영업 이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강력한 재무적 발판이 될 것"이라며 "이는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시장의 주류로 편입됐음을 보여주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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