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병사 성추문 사건에 대한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사경찰대대의 수사 과정 ‘부조리’를 추적하던 작년 가을 께 해당 부대 관련 또 다른 제보를 접했다. 군사경찰대대 소속 A부사관이 후배 부사관들 뿐만 아니라 상관인 장교들에게까지 욕설과 막말, 뒷담화 등 이른바 ‘갑질’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내용이 지휘관인 군사경찰대대장에게까지 보고됐지만, 해당 부대는 그에게 경징계인 ‘견책’ 처분만을 내렸다. 그런데 대대장은 이같은 징계마저도 유예시켰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간의 취재 내용과 경과, 이에 대한 본지 보도 이후 국방부 감사관실의 직무감찰 결과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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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에 따르면 A부사관은 부대원들이 있는 스마트폰 단체 대화방에서 50군사경찰대장을 ‘50’이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소대장 지들이 잘난 줄 알아요’라는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또 장교에게 ‘소대장급들하고는 통화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어버리고, A부사관 자신의 중대장에게 ‘대대장이 시키는 일이나 똑바로 하는게 새끼대장들의 일이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후배 부사관에게는 그의 상관인 장교를 ‘~급도 안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 전언이다. 모 소대장 앞에서는 특정 장교에 대한 욕설도 퍼부었다고 한다. 모두 상관 모욕에 해당하는 정황들이다. 게다가 상급자인 여군 대위에게는 ‘오올~연예인, 나야~’라고 하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얼짱’ 등의 성희롱적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초임장교들이 이같은 얘기들을 여러 장교들에게 토로했기 때문에 A부사관 관련 내용을 상당수 장교들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모 장교가 이들 사례를 수집해 지휘관인 군사경찰대대장에게 보고한 이유다.
이같은 보고를 받은 대대장은 대대 수사과를 통해 수사를 진행케 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이 이상했다고 한다. 대대장이 피해를 주장했던 인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진술서를 다시 작성케 하거나, ‘그런 의도가 아니지 않느냐’는 등의 회유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로 지목된 한 부대원은 대대장으로부터 ‘어떻게 하길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당초 대대장에게 보고됐던 상관모욕 혐의 등 주요 사안들은 징계 처리 과정에서 다 빠졌다는게 피해자들 주장이다. 실제로 당초 핵심 피해 당사자로 보고자료에 포함돼 있던 모 장교는 자신에 대한 조사나 수사 등 사실관계 확인 절차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지휘관에 의한 사건 축소·은폐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특히 A부사관이 대대장과 각별한 사이라는게 알려지면서 측근 감싸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둘은 대대장 부임 이전 이미 알던 사이로, 대대장 관사의 필요 물품을 A부사관이 챙겨 주기도 했다고 한다. A부사관은 대대장 사무실에서 ‘맞담배’를 할 정도로 막역하다는게 주변 부대원들 얘기다.
그러니 상관 모욕과 성희롱성 발언, 부대원들에 대한 욕설과 막말 등의 혐의가 견책 수준의 징계로 축소됐다는게 부대원들 시각이다. 징계위원회에서 확정된 A부사관의 비위사실은 후배 부사관에게 욕설, 장교에 대한 막말, 뒷담화식 언행에 따른 ‘품위유지의무위반(언어 폭력)’이다. 대대장은 이같은 징계도 결국 유예시켰다.
◇“그런 말 한 적 없다”, “편애 안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A부사관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장교를 상대로 욕설을 한 적도 없고, ‘요즘 소대장 지들’ 등의 얘기도 안했다”면서 “여군 대위에게 ‘연예인’, ‘얼짱’ 등의 발언도 한적이 없다. 다만 체육대회 당시 연병장에서 ‘아이돌 처럼 옷을 입었다’는 정도만 얘기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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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특정 부사관을 편애한 사실도 없다”면서 “규정에 따라 징계 유예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합참의장 표창 수상 등으로 징계유예 사유에 해당되고 △관계자 다수인 5명 중 4명이 처벌을 원하지 않았으며 △평소 적극적으로 업무하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A부사관의 합참의장 표창 수상 사실은 부대 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표창을 준 합참 내 관계자와 A부사관 자신이 ‘알아서’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공적심사서와 공적심사위원회 개최 관련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또 본지가 확인한 피해자 중 처벌을 원했던 인원은 3명 이상으로 대대장의 설명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조사과정서 가해자 진술서도 안받았다?
이같은 부사관 비위와 대대장의 감싸기 의혹에 대해 국방부 감사관실은 직무감찰을 통해 A부사관에게 ‘주의’ 조치만 줬다. 성희롱적 말을 들은 여군 장교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했지만 A부사관과 진술이 엇갈려 ‘부적절한 발언’을 한 수준으로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또 해당 사건 조사과정에서 가해자인 A부사관으로부터 진술서를 받지 않은 책임을 물어 군사경찰대대장과 수사관에게 ‘주의’ 처분을 내렸다. 조사 과정에서는 반드시 가해자의 진술서가 있어야 한다. 이는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지만, 감사관은 이를 별 문제 없는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이와 함께 감사관은 A부사관의 장교 모욕과 욕설, 반말 등에 대한 피해자들의 ‘주장’만 있을 뿐 당사자가 이를 부인해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고 했다. 대대장의 사건 축소·의혹 역시 말이 달라 확인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감사관이 대대 수사과로부터 당초 모 장교가 보고한 A부사관 혐의 내용 서류와 이후 대대장과 수사과에 의해 수정된 혐의 내용 서류 모두를 확보했었던 것으로 알려져 감찰조사 결과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감사관은 부대 내 모 장교가 부사관에게 ‘님’자 없이 ‘ㅇ상사’라고 호칭했다가 항의를 받은 것도 확인했지만 별 문제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부사관들은 신임 소대장 등 장교들에게 부사관을 부를 때 ‘님’자를 붙이라고 ‘교육’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위는 “모 중사로부터 님자를 붙여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전했다.
군 계급 체계상 장교가 상급자, 부사관이 하급자다. 부대관리훈령은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성(姓)과 계급 또는 직책명으로 호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ㅇ상사’, ‘ㅇ담당관’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성과 계급 또는 직명 다음에 ‘님’자를 붙이도록 돼 있다.
한편, 감사관은 군사경찰대대 내 부사관 출신 모 준사관의 장교들에 대한 욕설 혐의도 그냥 넘어갔다. 해당 준사관은 본지 취재 과정에서 “대대 회의실에서 주간회의 전, 모 중사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경례를 하는 것을 보고 약 2~3분간 욕설 등 질책한 적은 있다”고 했다.
당시 회의실에는 그 보다 상급자인 장교들이 다수 앉아 있었다. 장교들에 대한 부사관들의 ‘갑질’이 부대 내에서 상습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추측케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