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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희의 톡톡아트]에로스, 사랑과 전쟁 사이에서 태어난 악동?

유경희 기자I 2012.07.10 16:44:28

에로스의 탄생과 기원

파르미자니노, 활을 만드는 에로스, 1533-4년경


[이데일리 유경희 칼럼니스트] 에로스는 누구의 아들인가? 유명한 신화학자 조셉 캠벨에 따르면,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 태초의 4대신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비너스(아프로디테)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태초의 4대신은 바로 카오스(혼돈), 가이아(대지), 에로스, 타르타로스(심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악동 에로스가 최초의 신들과 동급이라니 믿을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이 네 신은 태초의 우주를 구성하는 신들인데, 카오스에게서 밤의 여신 닉스와 어둠의 여신 에레보스가 태어났고, 가이아에게서 그리스 신화의 주요 신들 대다수가 태어났으며, 타르타로스에게서 그리스 신화의 주요 괴물들이 탄생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에로스를 제외한 신들은 의인화되지 않아서인지 친밀감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세 명의 신들은 모두 중요한 신들과 괴물을 탄생시켰지만, 에로스만 유일하게 자손이 없는 것도 특이하다. 에로스는 그저 카오스와 대비되는 창조의 완성에 필요한 조화와 질서를 사랑이라는 요소를 통해 정립해주는 신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창조의 에너지로서의 에로스라고나 할까! 이처럼 애초에 에로스는 인간의 애욕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사랑을 상징했기에 세속적인 사랑을 통한 자손번식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신이었다. 그러다가 절대적인 사랑으로써의 에로스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으로서의 에로스로 의미가 변화하게 되자, 육체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로서 탈바꿈해서 등장했던 것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15세기에 프랑스에서 등장했던 퐁텐블로 화파의 영향으로 ‘에로스의 탄생‘과 같은 그림들이 유행하면서,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란 설이 인기를 끌었고, 그리하여 ·아프로디테의 아들설· 비중이 더욱더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올로 베로네제,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랑으로 묶여지다, 1570년대 중반(왼쪽), 파리스 보르동,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그리고 에로스, 1560(오른쪽)
이렇게 아프로디테의 아들이 된 에로스라고 할지라도 정작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더군다나 수많은 불륜을 저질렀던 아프로디테를 생각할 때 아버지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프로디테 역시도 우라노스의 성기가 떨어진 바다 속 거품에서 태어난 여신이었기에 아버지는 확실하지만 어머니가 없듯이, 에로스 역시도 아버지가 없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해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에로스의 아버지로 유력한 두 남신이 있다. 바로 헤르메스와 아레스이다.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이니,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와 결합해 ‘사랑의 메신저’인 아들 에로스가 태어나는 것은 참 그럴싸하다. 이미 둘 사이에서는 헤르마프로디토스라는 첫째 아들(나중에 자웅동체가 되었지만)을 낳았으니, 하나 더 낫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가장 강력한 설은 전쟁의 신 아레스와의 사이에서 에로스가 태어났다는 설이다. 사랑의 신과 전쟁의 신이 결합해 에로스가 태어났다니, 사랑과 전쟁이 마치 동전의 양면이라는 당연한 사랑철학을 설파하는 듯하다. 더군다나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사이에서는 여러 명의 형제가 태어났단다. 에로스의 형제로는 포보스(Phobos : 공포)와 데이모스(Deimos: 근심) 그리고 누이인 하르모니아(Harmonia: 조화)가 있다. 다시 말해 사랑과 전쟁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공포 → 근심 → 조화 → 사랑이라는 것이니, 이보다 사랑의 속성을 더 잘 나타내주는 것이 있겠는가? 그러니 가계적 혈통으로 보면 에로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훨씬 타당해 보이는 것이다.

영화 ‘헤드윅’ 중 ‘에로스의 기원’ 애니메이션
그런데 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에로스의 탄생보다 훨씬 더 매혹적인 것이 플라톤의 에로스 기원설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실 플라톤의 <향연>은 에로스에 관한 책이니, 그야말로 에로스의 철학을 가장 먼저 설파한 철학자일 것이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파네스의 우화를 인용해 태초에 세 종류의 인간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남자와 여자’ 양성으로 이루어진 ‘안드로구노스(Anthrogunos)’라는 인간들이 그들이다. 이러한 최초의 인간은 구형으로써, 팔과 다리가 네 개씩이며, 둥근 목 위에 똑같은 얼굴이 두 개가 붙어있었다. 하나의 머리의 양방향에는 각각 얼굴이 있고, 귀가 넷, 바깥쪽으로 난 성기가 둘이 있었다. 여덟 개의 손발을 가진 최초의 인간은 힘이 엄청 셌고, 사방을 볼 수 있었고, 이해력이 무지 빨랐다. 이렇게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최초의 인간들은 신들에게 도전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위협감을 느낀 신들의 신 제우스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번개를 던져 인간들을 둘로 갈라놓아 영원히 떨어져 지내게 만들어 버렸다. 더군다나 신들은 인간들이 자기의 잘린 자리를 보고 더 온순해지길 바라며 상처를 졸라 메워 배꼽을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고대 그리스 도자기에 새겨진 최초의 인 안드로구누스
여러분은 눈치 챘는가? 세 종류의 인간을 반으로 갈라놓았다는 것은 남성동성애, 여성동성애, 이성애라는 사랑의 세 가지 양상을 말하는 것이다. 수천 년 전에 이미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용인하고 있으니,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좀 놀랍고도 전위적이지 않은가? 어쨌거나 그 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 방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 에로스 즉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듯 사랑을 찾아 헤매는 우여곡절 파란만장의 삶이 시작된 것이고, 인간들은 자신의 반쪽을 찾으면 서로 껴안고 달라붙어서 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듯 욕망에 불타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인간 남녀의 몸은 제우스가 날린 불벼락 자국이 남아있다. 그러니까 남자는 ‘퇴화된 가슴’으로, 여자는 잘린 성기인 ‘클리토리스(음핵)’로!

그렇게 되면 에로스는 이미 남녀의 사랑을 초월한 어마어마한 이데아의 보고가 된다. 다시 돌아가, 플라톤은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에로스에 대해 논한다. 그에게 있어 에로스란 단순히 ‘남녀의 짝짓기‘를 떠난 ‘아름다움을 찾아 끊임없이 탐구하는 노력 자체’를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름다움이란 선한 것이고, 선하다는 것은 좋다는 것이다. 그리스적 의미에서 ‘좋다’ ‘선하다’는 것은 ‘완전하다’는 뜻인데, 완전하다는 것은 결핍이 없는 것이며, 결핍이 없는 상태는 ‘조화’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리스 미학의 3대 모토인 비율(proportion), 규준(canon), 조화(harmony)의 근간에는 에로스가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코레지오, 에로스의 교육, 1528년
그리고 나는 요즘 에로스를 곧잘 ‘삶 충동’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해석하곤 한다. 이때 에로스는 자기 보존 본능, 종족 보존 본능, 자기애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고, 항상 보다 큰 통일을 만들어내어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는 충동을 말한다. 바로 ‘죽음충동’인 타나토스(thanatos: 그리스 신화에서 죽음을 의인화한 신)의 대립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 고유의 생각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려온 것이다. 마치 사랑과 전쟁이 사랑의 이중성을 나타내는 사랑의 본질인 것처럼, 에로스와 타나토스 역시 맞물려 있는 개념 즉 동전의 양면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죽음 혹은 파괴의 충동이라는 것은 사랑의 결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에로스 즉 사랑은 사랑의 결여가 전제돼야만 그 본성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소중한 것처럼 말이다. 에로스는 타나토스와 붙어 있을 때만 강력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유한한 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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