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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정치 협상에만 의존…美재정·부채 악화”
피치는 1일(현지시간) 미국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했다. 피치는 강등 이유에 대해 “최근의 부채한도 교착 때문만이 아니다. 재정·부채 문제와 관련해 지난 20년 동안 거버넌스 기준이 꾸준히 악화한 데 따른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 정치권이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놓고 대치하고 이를 마지막 순간에 해결하는 일이 이어지며 재정 운영에 대한 신뢰도를 손상시켰다”고 덧붙였다.
무분별한 돈 풀기 이후 한도에 다다르면 다시 상향하는 과정을 오랜 기간 거치면서 재정적자가 지속 심화했고, 이에 더는 미 정부의 부채상환 능력을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은 1917년 제정된 법률에 따라 정부 차입에 따른 부채한도를 고정하고, 대통령과 의회 간 합의에 의해서만 한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미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보다 부채한도 협상을 통과의례 또는 형식적 절차로 여기고 한도 상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명확한 로드맵 없이 정치권 협상에만 의존하는 ‘땜질식’ 처방은 무분별한 정부지출로 이어졌다. 반면 세수는 줄어 재정적자가 심화했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정지출이 급증한 상황에서 작년 말부턴 국방 관련 지출이 늘었고, 올 하반기엔 인프라 관련 대규모 재정지출 계획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비 등 고령화 관련 지출도 늘어나는 추세다. 내년에도 부채가 한도에 달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재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피치 역시 이번 보고서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의 재정적자 비중이 2022년 3.7%에서 올해 6.3%, 2024년 6.6%, 2025년 6.9%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며 “향후 3년간 재정이 악화하고 국가채무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이자부담이 커진 것도 문제다. 이는 부채상환 능력을 약화시킨다. 미국은 세계 최대 채무국이다. 피터슨파운데이션에 따르면 이날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는 32조 6086억달러(약 4경 2270조원)에 달한다. 통상 GDP보다 국가부채가 적으면 지급 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미국의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올해 1분기 118.6%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 세계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95.5%)을 크게 상회한다.
피치는 “정부 정책 결정의 일관성 및 신뢰성 저하로 미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가 약화하면 정부의 자금조달 유연성이 감소한다”며 미국의 신용등급 추가 강등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재정개혁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거버넌스 악화를 해소해야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美정부 “자의적 결정” 반발…전문가도 “급작스러워 이해 어려워”
미 정부는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에 강력 반발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자의적이며 오래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으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미 경제가 강력하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역시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세계 주요 경제권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회복세를 이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도 트위터를 통해 △GDP 대비 부채비율 급증 △거버넌스 약화 △거시경제 악화 등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 조건 세 가지를 열거하며 “부채비율 급증은 올 상반기 없었고, 부채한도 협상도 전체 거버넌스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거시적으로도) 올해 미 경제는 지난해보다 나아졌다. 지금 현 시점에 (신용등급을) 하향한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