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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무부는 4일(현지시간)세금 바꿔치기(tax inversion)를 막기 위한 새 규제안을 공개했다. 작년 9월과 11월에 이어 세번째다.
최근 미국 기업들이 조세회피를 위해 본사 주소지를 미국보다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로 옮기는 이른바 조세회피용 M&A를 막으려는 목적에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올해 화이자와 앨러건의 합병이다. 화이자는 앨러건과 합병 뒤 본사를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2.5%로 미국(35%)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날 재무부가 발표한 규제 방안의 핵심은 ‘수익 축소(earnings stripping)’ 방식의 조세회피 방지다. 지금까지는 세율이 낮은 지역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으로 수익을 몰아주고 미국 자회사로 비용은 떠넘겨 세금을 낮추는 방식이다. 가령 본사가 미국 자회사에 영업비용을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절세가 가능했다. 이자 납부액을 비용으로 인정해 세금을 매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대출도 부채가 아닌 수익(증권)으로 간주해 세금을 물리기로 했다.
아울러 최근 3년간 인수합병을 통해 취득한 미국 자산은 빼기로 했다. 합병회사에서 미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면 적용되는 규제를 피하려, M&A로 몸집을 부풀리는 우회로를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미국 주주의 지분율이 합병사의 60%를 차지하면 일부 규제가 적용되고, 미국 주주의 지분율이 80%에 달하면 미국 기업처럼 과세한다. 재무부의 규정은 당장 4일 이후 종료되는 모든 거래와 기업 간 부채 거래에 적용된다.
재무부가 공개한 방안은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버트 윌런스 조세제도 연구원은 “재무부의 새 규정이 본사를 옮겨 얻을 수 있는 과실을 가로막는 중요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면서 “시스템적으로 기업 본사 이전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막는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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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치로 조세회피 목적 M&A에 나선 기업들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화이자와 앨러건의 M&A가 깨질 판이다. 작년 말 미국 거대 제약사인 화이자는 보톡스를 생산하는 아일랜드의 앨러간을 1600억달러(약 186조원)에 사들이는 합병안에 합의한 바 있다. 새 규정을 적용하면 비용이 확 늘어 주소를 아일랜드로 옮겨도 실익이 없다는 평가다. 합병 무산 우려가 커지면서 앨러간 주가는 시간 외 거래서 22% 폭락했다.